정부에 대한 감시의 효율성을 높이고 늘어난 인구에 맞춰 직무를 수행하려면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거대 양당의 미온적인 태도는 여전하다.
헌법은 국회의원수를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2016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 300인으로 정하고 있다.
5100만명인 현재 인구를 고려하면 약 17만명 당 국회의원이 1명이다.
제헌헌법 제정 당시의 국회의원 제적은 200명으로 약 2000만명이던 당시 인구를 고려했을 때 10만명 당 1명 수준이었다.
의원 1명당 책임지는 인구수가 1.7배로 늘어난 셈이다.
때문에 사회 각계에서는 늘어난 인구와 비대해진 정부를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선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민주당과 한국당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현재 정원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비례성 강화를 추진하는 쪽으로 당론을 모으고 있다"며 의석수 증가 없는 제도개선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한걸음 더 나아가 300명인 의원정수를 거꾸로 줄이자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행 제도 하에서 누리는 기득권을 굳이 내려놓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기반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29석을 가진 원내 1당인 민주당은 총선 3년차인 현재도 40% 안팎의 여유 있는 당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보수 진영이 여전히 분열과 대립으로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차기 총선에서도 원내 1당을 수성이 전망되기 때문에 굳이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없다.
지방선거 참패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 한국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구당 2~4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와 도시지역과 농어촌지역의 선거방식을 달리하는 도농복합형제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의원정수를 300명에서 200명으로 100명이나 줄이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까지 내놓은 상태다.
한두 개를 줄이기도 쉽지 않은 의석수를 100개나 줄이자는 현실성은 낮고 비례성 강화에는 역행하는 정반대의 안을 내놓음으로써 결국 현행 유지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는 풀이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의원정수 증가의 또 하나의 걸림돌은 의석수를 많이 늘리면 기존에 누리던 혜택과 특권, 희소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원들의 이기심이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의회가 가진 권력을 분점하게 되는 것인 만큼 각각의 권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의원들이 왜 정수 증가에 미온적인지는 왜 대법원이 대법관 숫자를 늘리는 것을 싫어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고 말했다.
업무 과부하를 해소하겠다면서도 대법관 수를 늘리는 간단한 방법 대신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함으로써 대법관의 권위를 지키려던 대법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국회의원이 가지는 국민의 대표성은 강화하는 반면 특권은 줄이려면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각계의 중론이다.
국회의원 1명당 유권자 수가 줄어든다면 유권자의 권리와 입김은 그만큼 강력해진다.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세비 등 지원규모 총액을 그대로 동결한 상태에서 의원정수만 늘어난다면 특권 또한 자연스럽게 줄어들 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가 9만7000명으로 우리의 제헌국회 당시의 기준과 비슷한 점도 의원정수를 늘리는 근거가 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스웨덴은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음에도 국회의원 수는 349명이나 돼 의원 개인이 누리는 특권은 적지만 그 국회는 맡은 역할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의원 수를 99명에서 120명으로 늘린 뉴질랜드의 사례를 참고할 때 우리도 20% 정도 늘린 360명 정도가 합리적인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말로 종료되는 정개특위의 활동시한을 감안하면 선거제도 개혁을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개혁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각 당이 기존 입장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상세한 당론을 펼쳐놓고 합의점을 찾기 시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