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IMF는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홍기자의 쏘왓] IMF 기업과 정부에 '부채 인식' 심어줘, '리스크 관리 시스템' 만들어
비정규직 양산·고용 불안·빈부격차 등 부작용은 현재 진행 중
우석훈 박사 "IMF 지나며 '기업이 살아야 한다', '배금주의' 일상화 됐기 때문"

■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코너 : 홍영선 기자의 <쏘왓(So What)>

◇ 임미현> 화요일 <홍기자의 쏘왓> 시간입니다.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제뉴스 알아보는 시간이죠? 홍영선 기자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얘기 준비했나요?

◆ 홍영선> IMF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임미현> IMF 구제 금융 시절을 말하는거죠?

◆ 홍영선> 네. 요즘도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IMF 또 오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때마침 IMF를 처음으로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내일 개봉하더라고요. 오늘 IMF 이야기를 해보려고 시사회에서 미리 영화를 보고 왔는데요.

IMF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상당한 영향을 줬더라고요. 오늘은 IMF가 바꿔놓은 우리 사회,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IMF는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임미현> 21년 전 일이어서 당시 상황을 모르는 분들도 있을테니 다시 한 번 짚고 가죠.

◆ 홍영선>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는 국제 통화기금을 말하고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IMF라는 건 1997년 11월 21일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우리 정부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요청한 사건을 말합니다.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우리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40억 달러도 갖고 있지 못해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고, IMF로부터 195억 달러를 빌렸습니다.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4년만에 조기 상환했죠.

◇ 임미현> 당시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태국, 홍콩,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위기가 고조됐는데, 우리나라는 96년도에 OECD에 가입했다고 좋아한 것도 잠시 뉴스에 하루가 멀게 기업들 부도 소식이 전해졌어요.


◆ 홍영선> 저는 사실 IMF 하면 기업들의 줄 파산, 금 모으기, 절약 등 단편적 기억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100대 기업 리스트 가운데 파산된 기업들을 빨간 줄을 긋는데, 거의 다 빨갛게 그어진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업들이 계속해서 파산한 건지 실감이 나더라고요. 거기다 관련 투자자, 공장들도 다 문을 닫고 집 팔고 압류 딱지 붙이고, 영화 보는 내내 '생지옥'을 경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진=MBC뉴스 잘무리)
◇ 임미현> 국가부도 위기 뿐 아니라, IMF가 돈을 빌려주는 대신 내건 조건들 때문에도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구조 조정을 통해 거의 우리 경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 홍영선> IMF가 당시 우리나라에 내건 조건들을 보면서 계속 저도 모르게 "실화냐"라는 말을 내뱉었는데요. 당시 최고금리를 30%까지 확대하고,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해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대폭 허용하라고 했더라고요. 금융사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하고요.

◇임미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요구였어요. 정말. IMF를 통해서 우리 경제가 정말 많이 달라졌는데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뭘까요?

◆ 홍영선> 경제 전문가들은 국가나 기업이 '우리가 망할 수 있다'라는 걸 깨달아서 '부채'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 때문에 위험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고요. 당시 은행들은 별 걱정 없이 돈을 빌려주고, 당국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는데요. 위기를 겪고 난 뒤 부채 의존도도 급격히 감소했고 각 금융사와 정부에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죠.

또 영화에서도 한국은행 팀장인 김혜수와 재정부 차관이 크게 대립하는데요. 항상 재정부 차관의 입김이 먹힙니다. 한국은행이 IMF 이후 독립한 점도 그런 맥락이겠죠.

◇ 임미현> 노동시장도 IMF 이후 상당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IMF 오기 전에는 '평생 직장'이란 말이 있었는데 이후에는 싹 사라진 거거든요.

◆ 홍영선> 네 영화는 IMF 발표 이후 우리나라가 130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해 고실업국가로 접어들었고, 자살율이 전년대비 43%퍼센트나 증가됐다는 점을 각인시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갑자기 '비정규직 전환 동의서'나 '명예퇴직 신청서'를 받아들게 되고요. 지금 노동시장에서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씨앗이 IMF 당시 뿌려진 것이죠.

그리고 또 사실 당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점차 튼튼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IMF와 미국의 요구대로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보니,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양극화 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임미현> 자 그럼 여기서 IMF, 쏘왓(So what)? 이게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냐. 이런 질문 안해 볼 수 없습니다.

◆ 홍영선> 영화도 계속해서 쏘왓을 외치면서 이런 멘트를 날립니다 "위기는 반복돼요".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IMF가 오는 건 아니냐 경각심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일텐데요.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IMF만큼의 경제 위기는 오지 않겠지만, 다른 종류의 '저성장'이라는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는 만큼 계속해서 주시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지금은 일상화된 소득 양극화, 강남 생활 등이 IMF 때 거의 시작된 점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했습니다.

◇ 임미현> IMF 이후로 양극화가 정말 심화됐죠. 그때 지금의 강남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배우 유아인. (사진=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컷)
◆ 홍영선> 이 영화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배우 유아인인데요. 우리나라가 부도가 날 것이라는 데 배팅해 큰 돈을 얻고 이를 통해 강남의 건물들을 무더기로 매입합니다. 일반 서민을 연기한 허준호는 공장이 부도나고 어음이 휴지쪼가리가 되는데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아마 영화를 통해 IMF를 시작으로 한국 경제가 어떻게 소득 양극화로 변하게 됐는지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더라고요.

◇ 임미현> 양극화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도 당시가 거의 시작이었죠?

◆ 홍영선> 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의 말 들어보시죠.

"정치나 사회 영역에선 민주주의가 발전했는데 경제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한참 멀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문제를 순차적으로 해소하는 길을 걸었어야 했는데 IMF를 통해 너무 급진적으로 바뀌었어요.

이로 인해 돈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 배금주의가 생겼고요. 요즘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이른바 '갑질'이 생긴 겁니다. IMF로부터 '기업은 살아야 한다' 이런 무의식이 일상화 됐기 때문이죠.

◆ 홍영선> 오늘 날 가장 큰 사회문제로 꼽히는 고용 불안, 빈부 격차, 갑질의 시작이 바로 IMF 협상인만큼 단순히 21년 전의 과거로 치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 임미현> 네.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홍영선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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