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가슴 속 깊이 침잠했던 옛 기억이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떠오른다.
고(故) 이영훈(1960~2008) 작곡가의 노래는 다른 어떤 노래보다 유독 추억 소환의 힘이 강하다.
뜨거웠고 끝은 시리도록 아팠던, 누구나 한번은 이별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그때 그 시절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의 노래에서는 80~90년대 '광화문'으로 대변하지만, 반드시 그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마다 품고 있는 그 시절 그곳이다.
'옛사랑' '광화문 연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 이영훈의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 여행을 하고 나면, 입가엔 달콤 쌉싸름한 미소만 남는다. 그땐 그랬지.
여기서부터는 노래가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노래 그 자체이다.
극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지질한 한 남성의 이야기 같지만,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극 중 등장하는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다소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지만, 그때 그곳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광장은 개인의 공간인 동시에 모두의 공간이었다. 사랑 때문이든, 시위 때문이든, 월드컵 응원 때문이든, 광장은 모두에게 늘 열려 있었고, 모두를 뜨겁게 했다.
다소 무거워지려는 극을 노래와 유머로 가볍게도 다시 무겁게도 자연스레 조율하는 중심추 역할은 시간 여행자 '월하'가 맡았다.
공연 후 커튼콜은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한다. 극 중 흘러나오는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던 관객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순간이다. 커튼콜 때문에 간다는 관객들이 있을 정도이다.
제작사 측은 이런 관객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오는 28일 그리고 내달 5일과 12일은 함께 '떼창'을 할 수 있는 싱어롱 커튼콜을 진행한다. 이 세 날은 기존 커튼콜 곡목이던 '붉은 노을'에 또 다른 곡 1곡을 추가해 총 2곡을 다 함께 부를 수 있다.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 자연스레 이영훈의 노래 하나쯤은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광화문으로, 덕수궁으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