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뒤테' 정인선 "엄마-아내 타이틀에 갇히지 않고 싶었다"

[노컷 인터뷰] '내 뒤에 테리우스' 고애린 역 정인선 ①

지난 15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고애린 역을 맡은 배우 정인선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정인선은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등 두 편의 드라마로 시청자를 만났다. 전자는 코미디 비중이 높은 청춘 시트콤이었고, 후자는 무거운 사건과 발랄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정극이었다. 두 편 다 코믹 연기의 리듬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을 정인선의 경우로 좁히면, '아이'(들)와 함께 연기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는 갓난아이 솔이와 깜짝 등장해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를 들썩이게 한 '어린 엄마' 한윤아 역을,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는 전설의 국정원 블랙 요원 김본(소지섭 분)과 운명처럼 첩보 전쟁에 뛰어든 아이 둘의 엄마 고애린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왜 '아이'를 정인선의 중요한 짝으로 뒀을까. '내 뒤에 테리우스' 박상훈 감독이 제작발표회 당시 한 말에 그 답이 담겼다. "인선 씨는 애 엄마 역을 어떻게 저렇게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살아본 마냥."

물론 그게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전작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 갓난아이와 같이 연기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번에는 '준준 남매'를 기르는 6년차 주부 고애린 역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맘 카페에 가입했고 자료 조사에 몰두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사연을 올리는 네이트 판도 열심히 봤다.

그러나 정인선은 '내 뒤에 테리우스' 고애린을 두 아이의 엄마,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아내로만 바라보지 않았고, 시청자들에게 그렇게만 보이는 것 역시 원치 않았다. 아내와 엄마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은 인간 고애린을 표현하고자 애썼다고 고백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MBC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 종영을 맞아 정인선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내 뒤에 테리우스'가 끝났다. 종영소감 부탁한다.

저한테 되게 큰 산 같은 매일이, 과제였던 작품이 끝났다. 다행히 너무 좋게 봐 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작품도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너무 감사한 나날들 보내고 있다. 저 스스로 정말 속이 시끄러워지는 한 해여서 (웃음) 아직 미처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돌다 보니까 생각 정리가 돼서 이제 좀 끝난 거에 대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끝나고 여행 다녀오면서 생각 정리 잘해서 또 좋은 모습으로 보여드리려고 한다.

▶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이어 이번에도 아이가 있는 엄마 역할이었다.


전작에서 엄마 모습을 잘 봐 주셨던 것 같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서) 코믹 리듬 템포를 배웠기 때문에 그것과 정극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더 애린이로서 믿어주셨던 것 같다.

정인선은 올해 출연한 두 편의 드라마에서 모두 아이 엄마를 연기했다. '내 뒤에 테리우스' 고애린은 뜻밖의 사고로 갑자기 남편을 잃고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6년차 주부였다. (사진='내 뒤에 테리우스' 캡처)
▶ 두 아이 차준수-차준희, 일명 '준준 남매'가 극중에서 귀여움을 담당했다.

너무 귀엽지 않나. (웃음) 너무 똘똘하다. 처음부터 (만나면) 볼에 뽀뽀하게 시켰는데 그게 효과가 좋더라. 금방 친해졌다. (볼 뽀뽀라는) 원칙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왜 입술 뽀뽀는 안 하냐고 하는 바람에 중반부터는 입술 뽀뽀를 했다. 아이들이 까르르 하는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 아까 매일이 과제라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

애린이라는 사람은, 우선 여섯 살 아이들을 이미 6년째 키우고 있었고 6년째 가정을 이끌어가는 프로 주부의 모습도 있었으며, 아내로서의 모습도 있었다. 경력단절이 6년차였고. 그게 지금 막 벌어져서, ('으라차차 와이키키' 속) 윤아처럼 지금 막 부딪히는 걸 표현해내는 게 아니었다. 이미 (이 상황을) 겪고 지나 축적된 인물이 그거에 한이 맺혀서 동근 오빠(극중 남편 차정일 역)랑 싸워야 했다. 싸우고 풀기 전에 남편이 죽었고,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아이들을 이끌고 살아나가는 모습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유쾌한 파트를 담당하니, 좀 더 유쾌한 톤의 연기를 해야 했다는 점이 초반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끝내고 나면 제가 수행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애린이 자체를 좀 입체적으로 보고 접근했다. 처음에는 애린이라는 이름보다 엄마나 아내로서의 모습이 전부인, 말 그대로 '나 일 잘하던 여자였는데' 하는 과거형의 모습이었다. 중간에는 뭔가 능동적으로 세상에 나오고 싶어 하는 용감한, 그리고 정말 일을 잘하고 자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엄마 애린이와 인간 고애린의 중간 지점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엄마나 아내의 타이틀에 갇히지 않는 정말 '사람 고애린'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사회에서도 안정적으로 뭔가 이끌어 갈 수 있는, '일 잘하던 여자'라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일 잘하는 여자'가 되어서 아이들도 키워내고 새로운 누군가도 만날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

(요즘은)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그 뒤의 이야기가 잘 없지 않나. 뭔가 결정적인 사건들을 향해서 달려간다. 되게 결정적인 일들이 있고, 그 후의 이야기는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살았는데?' 하는 이야기가 모든 콘텐츠에서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정말 그런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입체성을 보여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산을 넘어도 또 산이 있고 (웃음) 이러더라. 그런 부분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제가 계획을 좀 욕심내서 잡아서였을 수도 있다.

▶ 인간 고애린의 입체성이 잘 드러난 중후반부의 장면을 꼽자면.

음… 중후반의 애린이는 '애린이 같은' 말을 하는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소파 누워서 우는데, 눈 가리고 우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장면에서는) 다 엉엉 우는데 거기서 힘겹게 혼자서 얘기한다. "지금까지 잘 참아왔는데 결국 또 이렇게 됐네?"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게 애린이 삶을 다 대표해 주는 말 같았다. 매일매일 쉬는 날 없이 꾹 참고 달려온 인물이라고 봤는데, 그 얘기를 써 주시니까 '아, 제가 고애린을 제대로 파악한 거군요, 작가님?' 하고 생각했다.

(애린 캐릭터에서) 포인트를 3개 정했는데 마지막 포인트를 여기서 시작하면 되겠다고 했다. 진실을 파헤칠 때도 초반, 중반, 후반의 애린이가 다 다르게 접근한다. (초반엔) 남편의 CCTV 얘기를 듣고 어안이벙벙해서 현실 감각이 없는, 좀 더 미숙한 느낌으로, 눈치를 채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중반에는 뭔가 되게 능동적이고 킹스백 사무실까지 추리하는 모습이 나온다. 일단 행동하고 본다. 어떻게 보면 되게 용감한, 행동력이 이만큼 올라와 있었다. 후반의 애린이는 남편 죽음 진실의 퍼즐 조각을 혼자서 맞추기 시작한다. (자기) 생각과 사람들 이야기를 종합하고, 감정 표현도 과하지 않고 오히려 차갑게 냉정해졌다.

또한 고애린은 결혼 후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느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기도 했다. (사진='내 뒤에 테리우스' 캡처)
▶ 극중에서 국정원 쪽이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애린과 킹캐슬 이웃들은 조금 더 밝은 분위기를 담당했다. 애린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등 사연이 있는 캐릭터여서 톤을 잡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큰일을 당했는데 마냥 유쾌하게 가는 것도 물론 가능했지만, 보는 분들이 너무 이질감 들어 하실까 봐 그런 톤 앤 매너 잡는 게 너무 어려웠다. (감정을) 너무 쏟아내는 연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저도 그게 진짜 힘들었다. 이제 유쾌한 톤 쪽으로 가도 될 시점에 갑자기 본 오빠가 죽는다고 그러고, 그래서 제주도 가서는 내려놓게 됐다. 후반부 포인트를 거기서 잡았는데 오빠랑 바다에서 재회하고 뭔가 다시 또 밝아졌는데, 그 시점에 남편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가고… (웃음)

진짜, 다음 화가 예측이 안 되는 거다. 읽으면 너무 재미있는데, 전개가 너무 예측 불가능하니까… (대본 보는 나는) 재밌긴 한데 내가 잘 전달해야 (시청자들도) 재밌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이게 정말 어렵더라. 감정선도 쉽지 않고.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울었고, 중후반에도 많이 울었는데 우는 게 너무 똑같으면 안 되지 않나. 어떻게 다르게 우는 느낌이 나야 하나,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무너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 고애린 캐릭터도 그렇지만, 작품 자체도 진지함과 발랄함을 동시에 가져가야 했다. 잘 어우러지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는데.

('내 뒤에 테리우스'에선) 죽음이라는 소재가 첫 화부터 등장했다. 작품에서 죽음이란 장치를 (초반부터) 쓴다는 건 되게 위험한 일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잘 흘러가는 힘을 봤다. 사실 감독님과 작가님의 합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나올 수 없었을 것 같다. 밝고 어두운 거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어느 한쪽도 제대로 못 할 수도 있는 거다.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 극중 애린과 이웃이 사는 아파트의 정보 조직)는 폴란드도 안 가 봤고 국정원 세트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어느 정도로 유쾌해야 할지 몰랐다. (반대로) 세미 언니(유지연 역)랑 도우(성주 분)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 드라마가 너무 무거운 거 아닌가?' 생각했다더라. (웃음) 도우는 국정원 파트를 찍으면서, '여기서 나만 혼자 떠서 너무 가볍게 연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서로 볼 수가 없으니까 첫 방송 전까지는 불안해했다. 어떻게 톤을 잡아가야 할지 어려움이 있었다.

첫 방송 전에 KIS 이끌어주는 건 기영 오빠(김상렬 역)였다. 템포를 정말 잘 잡아주셨다. 도가 트신 분인 것 같다. 사람 자체가 유쾌하기도 하고, (역할을) 자기한테 입혀버리는 분이다. 딱 오빠가 이끌어주셔서 (제가) 열심히 따라가면, 여진 언니(심은하 역)가 너무 가볍지만은 않게 잡아주고, 시아 언니(봉선미 역)가 예측 불가능한 애드립 터뜨려주셨다.

제가 재밌었던 건 그런 거였다. (국정원과 킹캐슬 사람들의) 두 세계가 공존하는 건 알았는데, 저도 이쪽 세계(국정원)로 넘어갈 때가 있고 (지섭) 오빠도 이쪽 세계(KIS)로 넘어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레옹, 무릎팍도사 분장은 전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인물들이 각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세계가 하나가 되는 거였더라. 저는 중간에서 만나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 줄 알았는데, 진짜 커다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걸 봤다. 다행히 서로 잘 합쳐졌고, 그걸 좋게 봐 주셨다.

배우 정인선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KIS의 정보력이 국정원보다 좋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비칠까 봐 걱정되진 않았나.

그게 저희 드라마의 비현실적일 수 있는 특징이긴 했다. 애린이가 비현실적으로 능력치가 좋은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보면서 사실 저는 작가님이 표현하고 싶었던 게 '당신 집에서 지금 당신을 길러준 분이 히어로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이지만 초능력까진 아니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애정도나 호기심,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다 가능한 행동이다. '일 잘하던 사람들'이 과거형을 딛고 (현재도) '일 잘하는' 것을 표출해 내는 모습을 이 드라마에서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고개 돌렸을 때 그 사람이 히어로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해녀도 했고 (웃음) 킹스백 사무실도 찾아냈다. 실제로 애린이가 (본을) 지켜주니까 (제목이) '내 뒤에 테리우스'인 것 같다고 얘기해 준 분도 있었다. <계속>

(노컷 인터뷰 ② 우려 뒤집은 정인선 "압박감에 무너지지 않아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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