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통신대란' 5G 전파 송출 앞두고 재난 무방비 '들통'

17만 회선 통신구에 화재 무방비, 백업 시스템도 없어 피해 규모↑ 복구 더뎌
'초연결사회' 안전·보안 무너지면 일상 마비…세계 최초 5G보다 안전 더 신경써야

2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KT가 내달 1일 첫 5G 이동통신 전파 송출을 앞두고 연기에 휩싸였다. 지난 토요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서울 일대 유·무선 통신이 두절되는 등 대형 악재가 터진 것이다.

더구나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지하 1층 통신구에는 방재나 복구 시설이 제대로 없어 국가기간통신사업망이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G 상용화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같은 통신대란 상황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고 와닿지 않는 5G의 선점보다 재난 대응이나 보안 문제에 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는 약 3시간 30여분 만인 오후 2시 30분쯤 불길이 잡혔다. 그러나 통신망 복구는 하루가 지나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곳 회선을 쓰는 서대문, 용산, 마포, 중구 일대 고객들은 유·무선 전화는 물론, 인터넷, IPTV, 신용카드 결제도 안 돼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면서 잊혀가는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고, 카드 결제 단말기도 멈추면서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불이 난 지하 1층 통신구에는 통신장비와 광케이블 등이 밀집한 지하도로, 전화선 16만 8000회선, 광케이블 220조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 출발한 유선망이 가정이나 기업 등 지역 내 가입자에게 전달되는 식이다.


이처럼 KT 아현지사는 전체 통신망 가운데 '말초신경' 격이다. 그러나 화재 현장에는 스프링클러 없이 소화기만 비치돼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소방법에 따르면 KT 아현지사는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은 아니다. 스프링클러는 지하구의 길이가 500m 이상이고 수도·전기·가스 등이 집중된 '공동 지하구' 일 때만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소화기 등 연소방지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불이 난 통신 지하구는 통신망과 광케이블 등 통신설비만 설치된 '단일 통신구'이고, 그 길이도 30m에 불과해 의무대상 기준에는 현저히 못 미치는 것.

이번 화재로 KT관련 통신장애가 발생해 마포구 연남동 등 일부 지역에 LTE망에 장애가 발생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또 광케이블이 매설된 구역에는 접근이 어려워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불길은 잡혔어도 연기가 심해 안전상의 이유로 소방당국이 진입을 불허하면서 KT 직원들이 현장으로 재빨리 들어가지 못했다.

더구나 화재가 발생한 아현지사는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피해 복구가 더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통신국사를 A에서 D까지 총 4등급으로 나누는데, 아현지사는 소규모 D등급이라 백업 의무가 없는 곳이었다는 것.

KT 오성목 네트워크 부문장은 25일 화재 현장을 찾아 "통신국사 가운데 중요한 국사들은 백업이 돼 있지만, 아현지사는 D등급으로 백업 시스템 없이 단순 광케이블만 지나는 국사"라고 설명했다.

각 국사의 등급 설정은 정부의 몫이다. 국사별로 전국망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구조다. 오 사장은 "국사 등급은 정부에서 정해준다"며 "이번 화재로 큰 장애가 발생했지만 (주요 피해 지역은)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로, 전국망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국사 등급이 올라간다"고 했다.

즉, 단순 케이블만 타버린 아현지사 통신구는 복구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다만 KT가 자체적으로 통신구에 50m마다 화재를 감지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을 설치해 화재를 조기 감지하고 150m마다 설치된 방화벽 등으로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KT로서는 이번 화재가 상당히 뼈아픈 상황이다. 수년간 준비한 5G 전파 송출을 일주일여 남긴 상황에서 재난에 가까운 통신 장애가 발생해 KT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통신에서 출발한 KT는 전국에 68km의 광케이블을 가지고 있고 전봇대 등 KT의 일부 통신 필수 설비를 다른 통신사도 공동으로 하는 등 가장 핵심적이고 공익에 가까운 인프라를 가졌다.

KT의 미숙한 초기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화재 발생 뒤 인터넷과 SNS 등에는 서울 일부 지역에 통신 장애가 났다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왔지만, 이동기지국 배치 등 긴급 복구작업은 화재 발생 4시간이 지나도록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KT는 불이 난 뒤 약 3시간 뒤인 오후 2시 10분쯤에야 "통신망 우회복구, 이동기지국 신속 배치, 인력 비상 근무 등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주말에 통신 대란이 발생하면서 금융기관, 산업단지 등 국가 중요시설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안도의(?) 한숨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만약 평일에 사태가 터졌다면 엄청난 국가 재난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을 내세우며 5G 상용화를 앞둔 상황에서 KT의 이번 화재는 미숙한 초기 대응과 재난에 무방비한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더구나 4G, 5G를 떠나 통신대란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고한 셈이다. 서울의 한 통신지사의 화재는 인터넷과 유무선 전화를 쓰는 일반 시민은 물론 식당, 커피숍, 편의점, PC방 등 상점은 물론 통신과 연결된 택시, 배달 앱 등도 영향을 받았다.

IT 업계 관계자는 "기술 발전과 함께 안전이나 보안 취약점은 늘 도사리고 있다. 물리적 안전이나 정보보안이 붕괴되면 순식간에 일상이 마비될 수 있다"면서 "결국 초연결사회로 갈수록 더욱 안전과 보안은 중요하다는 교훈을 던진 것"이라고 경고했다.

KT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재발 방치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황창규 KT 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철저하게 점검하고 더 나은 방향에서 재발 방지대책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T를 비롯,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대책 회의를 열고 신속한 복구 지원을 주문했다. KT는 통신망 장애로 영업에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이용 약관상의 피해보상과 함께 적극적인 보상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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