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시중은행 지점 감축

6개 시중은행 전년대비 73개 영업점 폐쇄…연말 추가감축 예고도
서울·경기, 노인인구 대비 영업점 수 편차 커…잘사는 동네에 몰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2월 충남 소재 태안지점을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서산지점에 통폐합했다. 태안군 지역주민들은 지점 폐쇄반대 서명운동, 국민은행 본사 앞 상경시위까지 벌였지만 막지 못했다.

태안군의회 관계자는 23일 CBS와의 통화에서 "농협이나 수협으로 옮기면 된다지만, 국민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뒀던 급여 소득자들은 서산지점까지 왕복 이동에 용무 시간까지 2시간 가량 들여야 은행일을 보는 실정"이라며 "지역경제에 악영향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KEB하나은행의 서울 응봉동출장소도 폐쇄됐다. 역시 지역주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반발했지만 은행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신한은행에서는 지난해 11월 서울 도봉동지점 폐쇄에 따른 주민 반발이 있었고, 도봉동출장소로 축소 운영 중이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경영상의 이유로 지점·출장소 통폐합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각 은행이 공시한 올 3분기 분기보고서 기준으로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한국씨티은행까지 6개 시중은행의 전국 영업점은 전년대비 73곳 줄었다.

1년간 영업점이 늘어난 곳은 우리은행(3곳) 하나뿐이었다. 감소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신한은행(30곳)이었고, 씨티은행은 전년대비 변동이 없었으나 2년전에 비하면 89곳이 줄었다.

영업점 통폐합은 계속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다음달 10일 가좌공단지점·반포지점, 17일 회기역지점, 24일 미아동지점 등 4개 영업점을 인근지점으로 순차 통폐합한다고 공지했다. 우리은행도 내년 1월2일 종로6가지점과 가락시장출장소 등 6개 영업점을 통폐합한다고 안내했다.

통폐합의 대체적 방향은 '돈 많은 동네'로의 이전이다. 지난 9월말까지 1년간 6개 은행 영업점 통폐합은 서울(34곳), 경기(12곳)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결과는 서울·경기 영업점 분포의 기초자치단체별 확연한 편차로 이어졌다.

전국은행연합회의 올해 6월 기준 집계와 행정자치부 10월말 인구통계를 조합하면, 잘 사는 동네 노인들에게 훨씬 많은 시중은행 영업점이 제공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9만8963명이다. 그런데 강남구에 위치한 6개은행의 영업점 합계는 240개나 된다. 노인 1명당 0.0024251개의 영업점이 있는 셈이고, 1만명당 24.25개나 된다.

반면 서울 은평구는 같은 방식으로 따진 노인 1만명당 은행 영업점 수가 2.62개에 그쳤다. 경기는 성남시가 5.82개로 가장 많았고, 양평군이 0.26개로 꼴찌였다. 인터넷·스마트뱅킹 적응이 더딘 노년 이용자를 감안할 때 편익의 불균형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태안군, 응봉동, 도봉동 주민들이 내건 영업점 폐쇄 반대의 근거도 '노인 등 취약계층의 피해 우려'였다. "고객 대다수가 모바일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노년층이라 지점이 유지돼야 했다"(태안군민), "주고객인 어르신들이 15분을 걸어가 다른 지점을 이용한다"(응봉동민)는 얘기다.

은행이 사회적 책임, 공익적 기능까지 고려해 영업점 존폐를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년전 외환위기 등 시기마다 국민 혈세로 공적자금이 지원됐기 때문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97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168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이 금융계에 투입됐는데, 절반 이상인 86조9000억원이 은행권 몫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은행 지점폐쇄 모범규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이 경영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상황이어서 특별한 진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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