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은 검찰의 수사와 재판 기록과 군 관련 기록을 토대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5·18 관련 행적을 분석해 22일 공개했다.
지난 1997년 5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발간한 5·18 실록(이하 실록) 등에 따르면 전씨는 1980년 5월 25일 오후 12시 15분쯤부터 2시간 가량 육군회관에서 주영복 국방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육군 참모차장 등과 옛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상무 충정작전)의 지침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5월 26일 오전 전씨는 보안사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노태우, 백운택 9사단장 등과 함께 상무충정작전에 대한 두 번째 회의를 가졌다.
전씨는 이 자리에서 정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작전 계획을 보고받고 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전씨가 5월 26일 계엄군에게 중식용 소 7마리를 지원하고 격려금을 지원했다는 505 보안대의 기록도 남아 있다.
5·18 기록관은 이 같은 기록들을 토대로 전씨가 5·18 진압작전과 관련해 두 차례 이상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전씨가 5월 21일 전남도청 집단 발포가 이어진 직후 자위권 발동과 계엄군의 광주 외곽 배치와 관련한 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도 나왔다.
5·18 실록에는 '21일 오후 2시 35분께 국방부 장관실에서 시위가 극에 달했다는 보고를 받은 전씨 등이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전환 배치해 봉쇄한 뒤 사상자가 발생하더라도 자위권을 발동해 신속히 진압하기로 했다'고 기록돼 있다.
앞서 국방부 과거사위가 기무사에서 찾은 육군 제2군 사령부의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 사항'에 '전(全) 각하(閣下)'라고 명시돼 있는 점도 전씨가 자위권 발동 명목으로 발포 지시를 내렸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전씨는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동시에 국보위 운영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해 다음날 국보위 설치 안을 의결시키기도 했다.
또 5·18 실록에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동시에 국보위를 발족시키려던 것이 그들 주도세력의 원래 계획'이라고 남아 있어 전씨가 정권 찬탈을 위해 시국 수습 방안을 기획·설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의갑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관장은 "전두환의 지시로 1982년 5월 발간된 '5 공화국 전사'에는 시국 수습 방안과 전두환이 재진압 작전 결정 모임에 두 차례 참석한 사실 등이 누락돼 있다"며 "하지만 12·12와 5·18 실록은 전두환·노태우가 구속된 상태에서 편찬돼 사실관계를 비교적 바르게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