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에 시달리던 조각가, 감각의 불완전에 눈뜨다

윤영석 개인전,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인간의 정체성에 주는 변화 탐구
30년간 이명 시달리면서 감각의 불완전성 포착
'발레'를 소재로 순수함 지향하는 작품도 선보여

사진=조은정 기자
스마트폰 몇 번 손가락 하나로 클릭하면 방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 가짜정보가 판을 치는데 무엇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 몸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기 보다는 게임과 영상 등의 간접경험이 대세인 세상.

서울대 미대 조소과 출신 윤영석(1958년생) 작가는 최신 작품에서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16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윤영석 개인전의 이름은 '소피엔스(SOPHIENS)'이다. 그리스 궤변론자들을 지칭하는 '소피스트'와 인류를 듯하는 '사피엔스'를 결합해 만든 작가의 신조어이다.

문어나 우주인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조형물 <아이오-AHIO)는 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머리가 비대해지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현대인들의 상황을 빗대었다.

이 조형물의 끝에는 '후사경'이 달려있다.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개인전 간담회를 하고 있는 윤영석 작가 (사진 =조은정 기자)
간담회 오픈을 앞두고 기자를 만난 윤 작가는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을 실감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지하철을 탔는데 어린 아이가 심하게 울어서 아이 엄마가 달래느라 애를 먹는 광경을 본 적이 있어요. 주변 사람들도 아이를 달래려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는데 갑지가 엄마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보여주니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며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더라구요. 저는 그때 미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인류가 갈 길은 어쩌면 정해져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작가는 시각의 오류를 이용한 '렌티큘러'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다. 빛을 굴절하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보이는 작업이다. 실재와 감각이 불일치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는 것. 소니에서 만든 인공지능 반려봇인 '아이보'에서 착안한 <아이보의 창>은 애완견까지도 인공물을 만드는 인류의 심리를 파헤쳤다.

그렇다면 더이상 인류에게 변치않는 순수한 무언가는 없는 걸까? 작가는 '발레'와 연관된 작품들을 통해서 물질 문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순수함을 담았다.

발레리노의 발을 클로우즈업한 렌티큘러 작품 와 발레를 배우는 소녀의 실루엣을 담은 작품은 마음 속의 순수함을 자극한다.

윤 작가는 "인간의 순수한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여전히 발레 지망생들은 똑같은 동작을 연습하면서 어떤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며 "어린 시절에 기억들로 인해 '발레'라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예술의 결정체로 마음속에 각인이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 작가는 30여년 전에 사고로 고막을 다쳐 '이명'(耳鳴, 귀울림)을 앓고 있다. 치유가 힘든 병으로, 수십 년을 귓 속에 울리는 소리로 고통을 받았지만 오히려 인간의 감각에 대해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명에 시달리는 귓 속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내.경 耳 內 景> 이라는 작품에는 작가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벽면에 설치된 거대한 귀를 사이에 두고 날카로운 침봉과 풍선을 설치했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소리인 이명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 감각과 지각의 불안전성을 표현했다.

작가는 앞으로도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감각의 주관성 등을 탐구할 생각이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는 편견은 없어요. 그저 이런 변화를 관찰하고 구현해내고 싶어요"

작품 전시는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2월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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