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황제 격파' 제주발 돌풍, 韓 자존심 지켰다

무명의 김봉철, 서울 3쿠션월드컵 유일한 4강

'이건 들어갔어' 김봉철이 18일 2018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4강전에서 샷이 성공하자 미소를 짓고 있다.(태릉=대한당구연맹)
'당구 황제'를 꺾은 무명의 제주 사나이 돌풍이 아쉽게 막을 내렸다.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4강에 올랐지만 끝내 결승행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팬들에게 알렸다.


김봉철(안산‧세계랭킹 118위)은 18일 서울 태릉선수촌 승리관에서 열린 2018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4강에서 그리스의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46위)에 16 대 40으로 졌다. 17이닝 만에 패배를 안으며 생애 첫 월드컵 결승행이 무산됐다.

당초 김봉철은 이번 대회 최대 돌풍을 일으키며 결승 진출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해 예선을 거친 김봉철은 32강전에서 '당구 황제' 토브욘 브롬달을 40 대 30으로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6 대 16으로 뒤진 가운데 거둔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생애 첫 월드컵 16강의 기세를 몰아 김봉철은 전날 8강에서도 김봉철은 베트남의 강자 응우옌꾸억응우옌(16위)을 눌렀다. 응우옌꾸억응우옌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던 선수.

하지만 4강 길목에서 김봉철은 제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선공을 잡은 김봉철은 초구에 1점에 그치고 2, 3이닝 연속 공타에 머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반면 카스도코스타스는 3이닝 연속 4점을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김봉철은 5이닝째 옆돌리기와 뒤돌려치기 등으로 3점을 냈지만 비껴치기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상대는 7이닝에만 무려 10점을 몰아치며 23 대 5로 앞서 브레이크 타임을 기분좋게 맞았다. 결국 김봉철은 17이닝 만에 완패를 인정해야 했다.

경기 후 김봉철은 "긴장감은 없었는데 잇따라 키스가 나면서 어려운 경기를 했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키스를 뺄 자신이 있었는데…"라며 입맛을 다시면서도 "상대가 워낙 잘 쳤다"며 칭찬을 잊지 않았다.

김봉철이 18일 2018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4강전에서 샷을 날린 뒤 예리하게 코스를 지켜보고 있다.(태릉=대한당구연맹)
그래도 김봉철은 이번 대회 수확이 적지 않다. 조재호(6위·서울시청), 김행직(9위·전남연맹)과 허정한(10위·경남연맹), 최성원(12위·부산시체육회), 강동궁(21위·동양기계) 등 국내 간판들이 모두 탈락한 가운데 유일하게 4강 대진표에서 생존했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개최국의 자존심을 세운 것.

특히 신산스러운 세월을 겪었던 무명 김봉철이기에 더 값진 성과다. 제주 출신 김봉철은 섬의 1인자로 군림하다 2008년 제주연맹 선수로 나섰지만 전국 대회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김봉철은 "자비를 들여 대회를 다녔는데 형편이 좋지 않았다"면서 "다른 일을 해야 하기에 당구에만 전념할 수 없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당구를 떠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김봉철은 주변 지인의 격려와 현재의 아내를 만나 마음을 다잡았다. 2013년 부산광역시장배에서 고(故) 김경률과 최성원을 잇따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이후 서울에 진출,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로 나서 지난해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전국대회 3위 2번에 전국체전 은메달에 이어 생애 첫 우승(강진청자배)을 차지했다.

그러나 또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 2월 불의의 사고로 오른 손등 골절상을 입은 것. 김봉철은 "지난해 12월 우승의 기운을 이어가야 하던 때였는데 깁스를 하고 6개월을 쉬어야 했다"면서 "훈련 대신 레슨을 하면서 보냈다"고 돌아봤다.

이후 김봉철은 다시 큐를 힘차게 잡았다. 깁스를 푼 지 불과 2개월여 만에 출전한 월드컵에서 4강 쾌거를 이룬 것. 특히 풍족한 지원 속에 해외 대회를 빠짐없이 출전하는 톱랭커들과 달리 구리와 청주 등 국내에서만 열린 월드컵에 3번째 출전에서 이룬 수확이다.

김봉철은 "자비를 들여서 해외 대회까지 갈 수는 없었다"면서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어 "만약 국제대회 경험이 쌓인다면 선수의 꿈인 우승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봉철의 제주발 돌풍이 세계 무대에서도 불어닥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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