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리종혁에게 선물한 '아버지 흔적'…"많이 고맙소"

이 지사, 직접 고른 리종혁 아버지 이기영 소설 '고향' 증정
리 부위원장 책에서 눈 못 떼고 보고 또 보고·감회 남달라
이 지사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만든 큰길 다져나가겠다"
리 부위원장 "옳은 말·지자체 교류협력 중요 절감"

이재명 경기도지사(사진 왼쪽)와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사진=경기도청 제공)
"많이 고맙소…"

지난 14일부터 경기도를 방문 중인 리종혁(83)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5일 수원 오찬장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뜻밖의 선물을 받은 후 화답한 말이다. 80세를 훌쩍 넘긴 산수(傘壽) 노인의 진심이 담긴 짧고 굵은 표현 이었다.


이 지사는 이날 오찬전, 리 부위원장에게 남측에서 발간한 서적을 선물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에서 리 부위원장은 생각치 않았던 선물을 받아 들고 경기도의 세심한 준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눈에 띄게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정을 읽기 쉽지 않았던 그가 표시날 정도로 반색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선물받은 책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인 작가 故 이기영(1895∼1984)의 소설 '고향'이었기 때문. 이기영 작가의 3남인 리 부위원장은 오찬 중이었음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내용을 몇번씩이나 들쳐보는 등 감회가 남달랐다는 후문이다.

북측 일행들도 현재 남쪽에서 '고향' 소설 책이 판매되는 등 이기영 작가의 흔적, 발자취가 이어지고 있음에 반가움과 함께 놀라움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사는 당시 리 부위원장에게 책을 건네면서 "과거에는 아버님인 이기영 작가의 작품이 (이곳에서) 출간되는 것이 쉽지 않았으나 지금은 잘 출간되고 널리 읽히고 있다. 경기도에 오신 기념으로 준비를 했다"고 말했고, 리 부위원장은 "많이 고맙소…" 라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 '고향' 책은 이 지사가 북측 방문자 중 리 부위원장이 포함된 것을 알고 난 직후 직접 아이디어를 내 고른 것으로 전했졌다. 이날 책은 리 부위원장 뿐 아니라 나머지 4명의 북측 일행들에게도 전달됐다.

오찬 전, 선물한 책이 윤활제 역할을 한 덕분인지, 오찬내내 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나갈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 됐다. 또 리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일행은 장단군 먹거리로 차려진 '평화밥상' 역시 남긴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맛있게 식사를 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앞선 일정인 경기 성남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이 지사와 리 부위원장간 나눴던 담화도 훈훈한 얘기거리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이 지사는 리 부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들어 놓은 큰 길을 우리가 단단히 다져나가겠다. 남북 지자체 교류 협력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단단히 다져나가겠다"고 말했고, 리 부위원장은 "옳은 말씀이다. 와서 보니 지자체 교류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호응했다.

한국에서 발행된 이기영 소설 '고향'(사진 오른쪽). 왼쪽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고향'의 판권지 초판.(사진=자료사진)
한편, 이 지사가 리 부위원장에게 '고향' 책을 선물한 것이 알려지자, 소설 '고향'의 내용과 작가 이기영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졌다.

한국 근대문학계 등에 따르면 책 '고향'은 이기영의 작가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표출된 작품으로 통한다. 조선일보에 1933년 11월 15일부터 다음해 9월 21일까지 연재됐다.

농민계몽이 아닌 경제투쟁으로서 농민운동을 강조한 것이 특징으로 신경향파 소설 작가인 이기영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하게 나타난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와 함께 한국 농촌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작품 내용은 동경에서 고학을 하다 학자금이 없어 중도 포기한 주인공 김희준이 5년만에 고향인 원터마을로 돌아와 겪은 상황들로 구성돼 있다. 마을에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들어섰으나 주민들은 가난을 면치 못한다. 김희준은 더 황폐해진 고향에서 농민들을 깨우치고 살 것을 다짐한다. 이후 그는 농민 의식을 깨우치고 집단으로 결집하는 매개적 역할과 함께 노동연대투쟁을 전개한다.

소설 '고향'은 이처럼 궁극적으로 사회변혁 가능성을 암시한 작품으로, 이기영은 이 소설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계급투쟁을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이기영 월북작가(사진 왼쪽)과 그의 3남인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사진=자료사진·동규기자)
이기영은 충남 아산 출신의 월북작가로 전 문예총 위원장이었다. 필명은 민촌(民村)이며 1904년 어머니 사망 후 1907년 사립영진학교에 입학, 1910년에 졸업했다.

1918년에는 논산 영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원생활도 했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영어정치학교를 고학으로 다녔다. 이 시기 그는 문학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한 뒤 창작에 몰두, 1924년 '개벽' 창간 4주년기념 현상작품모집에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가 당선됐다.

194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946년 월북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월북 전의 작품 활동을 보면 단편소설 90여 편, 단행본 14권, 희곡 3편, 평론 40여 편에 달한다.

이기영은 1984년 향년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북한문단의 중심에서 꾸준히 창작을 한 작가였다. 1972년 이후 사망 당시까지 북한의 문화예술총동맹(문예총) 위원장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능에 묻혀있다.

리 부위원장은 아버지 흔적이 담긴 선물을 품고 17일 북으로 돌아간다. 아버지에게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평양의 '능'을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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