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직권남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사법농단 핵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양승태 사법부'의 황태자로 불리우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4일 구속기소되면서, 2010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판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이하 수사팀)은 임 전 차장이 법관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키고(직권남용) 법관들의 재판권도 침해(권리행사방해)했다고 보고, 이같은 혐의를 모두 적용했다.

이와 관련해 임 전 차장은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 의원의 지위확인소송,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취소, 부산 법조비리 은폐 의혹 사건 등에서 재판부 결정과 선고에 깊숙이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 전 차장을 구속기소하면서 수사팀은 "직권남용이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하다. 특히 재판 개입은 단순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 외에 독립된 재판권을 방해한 것이다. 한화의 수사 압박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가 있어 이 부분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문제의 한화 판례는 어떤 내용일까. 2010년 1월 대법원 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경찰에게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수사를 중단하도록 청탁하고 또 이를 실행한 혐의로 최기문 전 한화 고문(전 경찰청장)과 장희곤 전 서울 남대문서장에게 각각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회장은 2007년 3월, 차남이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종업원들에게 폭행을 당하자 가해자를 찾아가 보복 폭행했다. 최 전 고문은 사건 발생 후 고교 후배이자 당시 관할서장이던 장 전 서장 등에게 수사 중단을 청탁하고, 장 전 서장은 이를 일선에 지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최 전 고문과 장 전 서장에게 유죄를 확정하면서 수사 중단을 청탁하고 실행한 것이 경찰의 수사권을 침해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화 판례'는 수사팀이 이번에 새롭게 발굴한 카드가 아니다. 사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 검찰 수뇌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이하 수사단) 역시 '직권남용'을 의율하기 위해 '한화 판례'를 거론한 바 있다.

수사단과 문무일 검찰총장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 핵심에는 김우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이 있었다.

수사단은 대검 반부패부장의 압수수색 연기 지시, 권성동 의원과 김 부장의 수사 관련 통화 등을 근거로 김 부장이 권 의원과 공모해 수사를 방해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적용하려고 했다.

이같은 수사단의 판단도 한화 관련 2010년 대법원 판결이 근거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반부패부 지휘로 압수수색이 실시되지 않았고, 보고하지도 않은 소환 일정을 상부에서 알고 되묻는 것 자체가 일선 수사 검사 입장에선 외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사단 측은 "직권남용은 지시를 받는 하급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단의 방침을 못마땅하게 여긴 검찰 모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직권남용이 무슨 성폭행 수사냐 하급자 입장에서 판단하게? 나도 수사를 많이 해봤지만 '직권남용'으로 유죄나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당시 수사단과 검찰 수뇌부 사이의 갈등은 검찰 전문자문단이 "대검 반부패부장의 직권남용 혐의는 기소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법원의 판단을 구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맥없이 끝났다.

직권남용,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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