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선동열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꺾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야구를 잘 모르는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이 국보를 무너뜨렸다. 그 의원은 국보는 물론 한국 야구 전체를 모독했다.
선동열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은 14일 오후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 7층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가대표 야구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선 감독은 미리 준비해온 기자회견문을 읽은 뒤 총총히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선 감독이 읽은 회견문에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절절히 담겨 있다. 선 감독은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했지만 변변한 환영식도 없었고, 세리머니도 할 수 없었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 수도 없었다"면서 "금메달의 명예와 분투한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미 당시부터 선 감독은 물러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후 결정타가 있었다. 바로 지난달 10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다. 선 감독은 "증인으로 출석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다"면서 "그 우승이(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국회의원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 또한 저의 사퇴 결심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는 한국 야구 대표팀 전체를 모독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오지환(LG), 박해민(삼성) 등 병역 혜택 논란이 컸지만 금메달을 따기 위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더군다나 손 의원은 하루 5개 경기를 지켜보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세밀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TV 중계 시청이 더 효율적인 야구의 특성을 모른다는 비판까지 직면했다. 결국 손 의원의 질타가 선 감독 사퇴에 결정타가 된 셈이다.
손 의원은 2주일 뒤 열린 국감에서도 또 한번 비수를 꽂았다. 정운찬 KBO 총재를 증인으로 요청한 손 의원은 미리 짠 듯 질문과 답을 주고 받았다. 손 의원은 야구 대표팀 전임 감독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정 총재는 "찬성은 하지 않는다. 국제대회가 자주 있지 않거나 상비군이 없다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손 의원은 선 감독의 TV 시청에 대해서 물었고, 정 총재는 "선 감독의 불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잘못했으니 나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선 감독은 회견에서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되었다"면서 "저의 자진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는다"고 했다.
디자이너 출신인 손 의원은 그동안 체육계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물론 스포츠의 잘못된 관행과 비리를 주목한 점은 인정받을 만하지만 이번처럼 비체육인으로 헛다리를 짚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치인의 위세를 업고 체육계 인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결국 손 의원이 고함을 지른 대로 선 감독은 물러났다. 야구인의 염원이었던 전임 감독제의 첫 사령탑이 정치인의 고함에 사퇴한 셈이다. 이제 손 의원의 요구와 정 총재의 생각처럼 야구 대표팀 전임 감독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예전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처럼 적임자를 찾지 못해 혼란에 빠지게 됐다.
손 의원 주장의 핵심은 청탁을 받아 선수들을 뽑았다는 것인데 선 감독은 "한국청렴운동본부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저의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신고를 했지만 종결 처분이 내려졌다"고 했다. 정황만 갖고 한 사람을 물어뜯은 모양새다.
선 감독은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제보는) 억측에 기반한 모함이었습다"면서 "마음 아팠다"고 했다. 한국 야구의 국보를 윽박질렀던 어느 국회의원과 메이저리그(MLB) 커미셔너처럼 능력대로 연봉을 받겠다던 KBO 총재의 냉소가 오히려 한국 야구의 퇴보를 불러온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때다. 2018년 한국 야구는 정치인이 마음대로 대표팀 감독의 목을 자를 수 있는 현실은 아닐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