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소유자는 아무런 유익없이 그것을 지키다 파멸하게 될 것이다."
오페라의 살아있는 역사인 천재 무대감독 아힘 프라이어가 총지휘하고 국내외 정상급 성악가들이 동원된 대작이다. 수십억원의 제작비가 들어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무대장치로 고전을 재해석했다.
내용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화려한 무대이지만 서사 흐름에 인생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황금 반지를 훔치고, 빼앗고, 다시 쫓는 악순환과 비극을 그렸다. 황금을 손에 얻어도 끝없이 욕심을 부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무대 장치도 압도적이다. 약 7m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 등장인물들이 오르내리며 무대를 활용한다. 황금 반지를 타고 오르는 무용수의 몸짓과 화려한 조명, 소품들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인터미션 없이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대작이다. 그럼에도 작품 집중도가 이어지는 것은 수준높은 배우들의 노래와 오페라 연주 때문이다.
배우들은 독일을 오가며 수개월간 연습을 이어왔다.
남성 배우들 중에는 주연 '보탄' 역의 김동섭은 극을 묵직하게 이끌어가고, 반지를 빼앗기고 저주를 남기는 '알베리히' 역의 세르게이 레퍼쿠스와 오스카 힐레브란트가 큰 가면을 쓰고 열연을 펼친다.
'돈너' 역의 마르쿠스 아이헤와 '파졸트'역의 전승현, '로게' 역의 아놀드 베츠옌, '프로' 역의 탄젤아키자벡의 노래도 무대를 꽉 채운다.
여성 배우들의 실력도 가감없이 발휘됐다. '프리카'역의 미셸 브리드트, '프라이어'역의 에스더 리, 에르다역의 나디네 바이스만이 높은 음역대를 오가며 무대를 휘감았다.
독특한 무대의상 때문에 배우들의 움직임이 약간 둔탁해지기는 했지만 오페라 연주와 배우들의 성악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특히 프라이어 감독의 머릿속에서 나온 무대연출과 의상 등은 오페라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보기 힘든 파격적인 콘셉트이다.
그는 "무대 위에 인물들은 매우 낯설게 보이지만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점차 익숙해지고 자신의 경험을 대입해가게 될 것"이라며 "이런 시도는 독일에서도 드문 시도이다. 바그너가 얘기한 '무시간성'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라고 작품 콘셉트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무대는 국내 여건상 제작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거대한 무대 장치를 독일에서 들여오는 과정과 연습실 부족 등으로 실무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시리즈는 내년에는 대관을 구하지 못해 서울에서 막을 올리지 못하고 경기도 성남에서 무대를 올리게 된다고 한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규모나 캐스팅, 작품 내용 면에서 한국 오페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니벨룽의 반지>의 첫 시리즈인 '라인의 황금'은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진행된다.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발퀴레'(2019.06), '지그프리트'(2019.12), '신들의 영혼'(2020.5) 등 4부작으로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