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음악 예능 '디테일 전쟁' 포문 연다

굳건한 '불후의 명곡'에 두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장
10대 연령 제한·파트 구분으로 차별점 '언더나인틴'
'심사위원=팬' 공식으로 트렌드 반영한 전략 '더팬'

한 동안 잠잠했던 지상파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시금 치열한 전쟁의 서막을 연다.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가 오랜 시간 지키고 있는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MBC와 SBS가 새로운 음악 예능 프로그램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불후의 명곡'과 달리 오디션 형식을 띤 이들 프로그램이 과연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불후의 명곡'의 새로운 경쟁 대상으로 떠오른 두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비교·분석해 봤다.

(사진=MBC 제공)
◇ 10대들의 '프로듀스 101'?…MBC '언더나인틴' 성장과 한계의 기로

MBC는 '프로듀스 101' 등 성공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양상을 닮은 '언더나인틴'을 대항마로 내놓았다. 아이돌 양산형인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차별점은 포지션별 파트 구분·10대에 한정된 나이 제한이다.

12살 최연소 래퍼 참가자를 비롯해 57명에 이르는 예비 아이돌들은 각기 보컬·랩·퍼포먼스 팀으로 나뉘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정창영 PD는 세 가지 파트로 이들을 구분한 이유에 대해 "내가 분석한 아이돌의 구성 요소는 보컬·랩·퍼포먼스였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한 시스템 안에서 트레이닝을 하는데 우리는 파트 별 경쟁 부분이 강화되어 있고 출연자 개개인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잘 하는 부분을 강조했다"라고 밝혔다.

'10대'라는 나이 제한에 대해서도 "10대들은 늘 새롭고 도전 의식이 강하며 크리에이티브하다.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방송을 보면 재미를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적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달리 전문성을 강조한 조건들이 과연 프로그램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아이돌 그룹 내 포지션이란 단순히 보컬·랩·퍼포먼스로 3등분 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실력 있는 아이돌 그룹 내에서는 보컬과 퍼포먼스 모두에 재능을 보이는 멤버나 랩과 프로듀싱 능력을 두루 갖춘 멤버가 있기도 하다.

지난 3일 첫 방송에 이런 실력자들이 등장했으나 한 파트에 속해야 하는 제한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장점 극대화'가 목적이었던 파트 구분 포맷이 실력파 참가자들에게 제약으로 작용하면서 한계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10대라는 나이 제한 역시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을 모으기에는 불리한 요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 프로듀서'를 내세웠던 '프로듀스 101'보다 규모를 줄여 더 세분화·전문화됐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끝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아직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과연 '언더나인틴'이 드러난 한계들을 어떻게 보완해 나갈 지가 프로그램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사진=SBS 제공)
◇ SBS '더팬' 보편적 공감대+팬덤 두 마리 토끼 잡을까

24일 첫 방송을 앞둔 SBS의 '더팬'은 비교적 아이돌 양산형 이전의 정통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다.

'스타들이 발굴한 예비 스타들을 팬들이 스타로 만든다'는 취지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케이팝스타' 박성훈 PD와 '판타스틱 듀오'의 김영욱 PD가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 모두 SBS 내에서는 경쟁력 있는 기획으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던 재원들이다.

'더팬' 역시 투표를 통한 팬덤 경쟁이 필수적이지만 지난달 31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는 '음악적 취향'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이 오갔다.

상업적 결과물이 명확한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달리 진정 다양한 취향의 리스너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이 목표다. 이미 전문적 검증을 거친 실력자들이기에 유명인 심사위원은 별도로 없고, 모든 과정의 심사는 팬들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이전이라면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었을 가요계 거물들은 '팬마스터'로 등장해 개인의 음악적 취향을 더욱 드러낼 예정이다.

김 PD는 "내공이 깊은 팬마스터들은 자기들의 삶과 연결된 무대 위 퍼포먼스를 보편적 공감대로 확장시킬 수 있을 만한 분들이다. 단순히 기획사로부터의 발탁이 아니라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복잡하지만 솔직하고 공감 가능한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퍼포먼스도 중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에서 어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라고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를 설명했다.

박 PD 역시 "이런 프로그램들에서 평가자의 입장에 섰던 스타들이나 팬마스터들이 자신의 취향을 담아 출연자들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이를 평가받기 때문에 권력 이동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 진정성 있게 인생을 읽어내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언더나인틴'처럼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출연자 수는 15명으로 오히려 적은 숫자다. 공신력 있는 스타들의 추천을 통해 엄선된 실력자들이 첫 방송부터 무대에 오르게 된다. 최연소 출연자가 15살이고 최연장 출연자가 28살이며 이들 출연자가 5명만 남은 순간에 생방송 투표로 팬클럽 전쟁이 시작된다.

PD들은 모든 과정에서 최종 우승자인 '가수'보다 '팬'이 중심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팬덤'에 절대적인 결정권이 부여되는 만큼, 15명 출연자들이 어떻게 동력을 추진해 팬들을 집결시킬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앞으로 토요일 저녁을 책임질 '불후의 명곡'·'언더나인틴'·'더팬' 세 프로그램 사이 차별점은 명확하다.

박 PD는 "'불후의 명곡'은 역사가 깊고 고정 시청자층이 탄탄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MBC에도 오디션 형식 프로그램이 있어서 부담이 안 되면 거짓말"이라며 "음악 소재 프로그램이라는 것 외에 세 프로그램이 모두 다르다. 우리의 새로운 요소가 오래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강점일 수 있다. 또 아이돌 콘셉트 오디션 프로그램보다는 더 보편적인 공감을 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이전보다 복잡 다양해진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은 작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니즈'를 반영하지 못하는 후발주자들은 금방 잊혀지곤 했다.

한 방송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프로듀스 101'의 등장 이후 '오디션' 포맷을 가진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은 큰 변곡점을 겪었다. 한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그렇게 해서 별다른 성과 없이 사라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다"고 최근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지형도를 설명했다.

이어 "한 동안 아이돌 열풍이 불었으니 이제 시청자들이 '슈퍼스타 K'나 '케이팝스타'처럼 다채로운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원할 시점인 것 같다. '더팬'의 기획은 지금 트렌드에 맞게 디테일을 바꾼 것이고, '언더나인틴'은 일단 디테일을 비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 두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따라 '불후의 명곡'처럼 이미 확실한 포맷과 시청자를 확보한 프로그램도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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