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A 베테랑들의 추억 "북한군, 웃다가도 살벌해져…아무도 안다치길"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전 북한 경비병들과 함께 근무한 JSA 노병(老兵)들 인터뷰
"북한군과 바로 옆에 같이 서서 근무, 일상적 대화 가능했지만 긴장된 분위기"
"북한, 미군들에 상당한 적개심…권총 외에 대검 휴대하며 은근히 협박"
"비무장화 됐지만 예상치못한 사건에 JSA 대원들 희생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돼야"
"JSA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는 평화공존 정착되길"

지난달 26일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는 권총을 비롯해 모든 무기들이 사라졌습니다.

조만간 남북한 장병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근무하고, 관광객들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친교산책을 한 도보다리를 비롯해 남북한 구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초창기 JSA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래전 JSA에서 군생활을 하신 분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저희 CBS에서 '판문점 미류나무 사건' 이전에 근무했던 JSA 노병 두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도성해 선임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정치부 도성해 선임기자

공동 경비 중인 남북한 장병들. (사진=성백랑 씨 제공)
◆ 임미현 > JSA 비무장 경비는 이미 시작된 거죠?

◇ 도성해 > 예, 남북한 경비 병력들은 지난달 26일부터 권총을 차지않고, 왼팔에 '판문점 민사경찰'이라는 노란 완장만 차고 근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임미현 > 아직까지는 남북한 장병들이 JSA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공동경비 하는 단계는 아닌거죠?

◇ 도성해 > 예,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지난 1976년 미루나무를 베려던 미군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사건 이후 42년만에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니 보완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에 하나 남북한 장병들끼리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고,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과정에서 월북이나 월남을 시도하거나 양측을 비난하는 시위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 등이 더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측에 있는 72시간 다리 끝 지점과 남측 진입 지점 일대에 남북이 운용하는 2곳의 비무장초소를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임미현 > 이번에 만난 분들은 76년 사건 이전에 복무했던 분들이신거죠?

◇ 도성해 > 예, 1973년부터 75년까지 JSA 대대에 몸을 담은 문근대(67)·성백랑(67)씨 두 분을 만났습니다. 두분은 입대 동기로, 각각 3소대와 1소대에서 JSA 대원으로 복무했습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 놓인 유엔군기와 인민군기. 창문으로 이를 지켜보는 북한 장교가 보인다. (사진=문근대 씨 제공)
◆ 임미현 > 그때는 남북한 장병들이 공동경비를 설 시기였는데, 분위기는 어땠다고 합니까?

◇ 도성해 > 군사분계선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이곳 저곳을 오가며 근무를 하긴 했지만 그닥 평화로운 상황은 아니었고, 당시에도 비무장이 원칙이었지만 권총을 차고 근무를 해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북미 정상회담도 열리고 국무장관이 평양을 4번이나 방문하는 대화와 협상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당시 북한과 미국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북한 경비병들은 우리 대원들과는 당시 남북한이 경제력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때고, 자신들이 더 잘살고 있다는 우월의식도 있어서 평소에는 좀 잘 지내다가도 미군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살벌한 분위기로 변했다고 합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JSA 대원으로 복무했던 (왼쪽)성백랑씨, 문근대씨
두 분의 얘기를 차례로 들어보시죠.

"항상 우리와는 잘 지내려고 하지만 미군들과는 그렇게 앙숙처럼 지냈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문근대)

"이북하고 우리하고 경제수준이 비슷했기 때문에 잘해주는 분위기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정전협정 위반에 대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제까지 웃던 사람들이 다음날에는 표변해서 살벌해지기도 했습니다" (성백랑)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테이블에 유엔군기와 인민군기가 나란히 놓여지는데 1㎝라도 높게 하려고 깃대봉을 길게 만드는 경쟁을 벌이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고 하네요.

◆ 임미현 > 큰 사건도 있었다구요?

미국 윌리엄 D 핸더슨 소령에 대한 북한 경비병의 폭행 보도. (사진=성백랑 씨 제공)
◇ 도성해 > 예, 1975년 6월 30일 오후 4시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 밖에서 당시 경비임무를 지휘하던 미군전방지원사령부 부사령관인 윌리엄 D 핸더슨 소령을 북한 기자와 경비병들이 집단 폭행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던 북한 기자들이 벤치에 앉아있는 핸더슨 소령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시비를 걸었고,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면서 집단 린치가 가해졌는데 이를 당시 경비근무에 투입된 우리측 장병이 말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외신에도 크게 보도됐는데, 이 장병이 핸더슨 소령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다가 발길질을 당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 주인공인 성백랑 씨 본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기자들 3명이 달려들어서 밀치고 발로 차서 핸더슨 소령이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출을 하려고 들어갈 때 북한군이 막아서 구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큰 사건을 겪었습니다" (성백랑)

그만큼 당시 북한군과 미군 관계가 악화될대로 악화됐었다는 점을 반증해주는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도끼만행 사건으로까지 비화된 것입니다.

◆ 임미현 > 그렇지만 이같은 살벌한 일상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경비를 서는 남북 장병들 사이 일반인들과 남측 경비병 근처를 지나가는 북한 적십자 안내원. (사진=성백랑 씨, 문근대 씨 제공)
◇ 도성해 > 예, 당시에 규정상 북한군들과 만나더라도 대화는 금지돼있었다고 합니다. 미군들이 지켜볼때는 더 그랬다고 하는데, 그렇지만 적십자회담이나 남북조절위원회 등 남북 대화가 열릴 경우에는 남북한 장병들만 지원근무에 나서기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주로 인사말이나 날씨 이야기를 하지만 아무래도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이다보니 여자 친구가 애인이 있는지 같은 좀 사적인 얘기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군사정전위원회의 등이 열려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볼때는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문근대)

회담장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남북한 경비병들과 회담장 밖에서의 경비병들 모습. (사진=성백랑 씨, 문근대씨 제공)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에서는 미군을 제외하고 경계근무를 했기 때문에 그때만 대화를 했다. 날씨나 인사말, 북한 농작물 재배, 또 젊은이들이기 때문에 여성 연애관이나 음주에 대해서도 말을 주고 받았다" (성백랑)

이분들이 당시에 찍은 여러장의 사진을 보면 남북한 장병들이 같이 섞여서 근무하고 있고, 몸을 밀착한 채 나란히 창문을 통해 회담장 안을 들여다 보는 장면, 사복을 입은 일반인들이 그 사이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걸어다니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42년만에 이런 장면들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지만 영화 JSA에 나온 것처럼 남북한 병사들이 몰래 만나 술을 마시거나 같이 담배를 피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공동 경비 중인 남북한 장병들. (사진=성백랑 씨 제공)
◆ 임미현 > 이분들은 JSA가 비무장화되고 다시 공동경비 방식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 도성해 > 예, 당시에 여러 좋지 않은 사건들을 경험해서 그런지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JSA 전우회는 국방부에 '비무장화는 안된다. 군사분계선을 넘나 들게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무래도 북한군을 믿을 수 없다는 상호 신뢰의 문제가 제일 큰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권총만 소지해야 되는 데 대검을 몰래 숨겨 가지고 다니면서 주먹을 단련할 때 생기는 굳은 살을 잘라내면서 은근히 겁을 주기도 했고, 심야에 우리 대원들이 탄 트럭에 자동화기를 난사해 여러명이 희생당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바로 믿을 수 있겠냐고 우려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JSA 경비병들. (사진=성백랑 씨 제공)
"권총을 찰 수 있었기 때문에 내 생명을 지킬 수 있었고, JSA 장병들은 관광객들도 보호해야 하는 임무도 있다"며 "비무장이라고 하지만 다른 무기를 가지고 올지 몰라 우려가 된다" (문근대)

"수십년간 북한군이 취해왔던 행동들을 봐서는 하루 아침에 달라지기는 힘들 것 같다 우려된다"며 "JSA 요원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성백랑)

하지만 베테랑인 두 노병(老兵)들도 인터뷰 말미에서는 "하루빨리 남북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대대장부터 사병까지 아무도 다치지 않게 안전한 환경속에서 근무를 하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잘 진행돼 하루 빨리 평화공존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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