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 실무 책임자인 비건 대표는 조만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대화에 앞서 한미 공조가 굳건함을 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의 분위기를 공유받고 협상 전략을 수립하는 등 최종 점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8일 입국한 비건은 다음날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연달아 회동했다. 이어 청와대를 찾아 임종석 비서실장과도 면담했다.
다음날인 30일에는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만나고,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의 사령탑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도 회동했다.
차관보 급인 비건 대표가 공식적인 대화 상대인 외교부 인사들 외에도 통일부 장관과 심지어 청와대 핵심 참모진까지 만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상황이다.
특히, 접점이 거의 없어보이는 임종석 실장과의 면담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의 요청을 임 실장이 응한 것으로 비건 대표가 최대한 많은 인사를 접촉하고 협의하려는 목적에서 방한했고,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이 다양한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므로 면담을 이상하게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을 맡고 있고, 세 차례 정상회담 과정에 적극 관여하는 등 남북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임 실장과도 대북 협상 전략은 물론, 북한의 의중을 확인하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이틀 연속 청와대를 찾은 비건 대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의 진행 사안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했다.
청와대는 비건 대표가 임 실장에게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고, 정 실장과는 회담 준비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현재 북미는 다음달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로 2차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고위급 회담 개최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비건 대표가 본격적인 북미 대화 재개를 앞두고, 북한과의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판단을 듣고, 마지막 정비 작업에 나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비건 대표는 우리측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 마다 굳건한 한미 공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비건 대표는 이도훈 본부장과의 회동 전에 "우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협력해 왔고,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고, 강경화 장관과의 면담에서는 한미공조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이도훈 본부장과 만찬 회동을 여는데, 이에 대해서는 "오늘 저녁에는 외교부 카운터파트(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와 14번째로 만날 예정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한미간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북미관계와 비교 했을 때 남북관계가 너무 앞서나가는 데 불편한 시선이 나오고 있으며,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건 대표가 반복적으로 '한미 공조의 중요성과 굳건함'을 강조함에 따라 '한미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 대북제재 문제를 거론하면서 북미간 교착이 길어지고 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를 푸는 일은 없다며 오히려 제재의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일부 남북 협력사업의 제재 예외 인정을 요구하는 절충안을 제시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표가 주도할 고위급회담과 후속 실무협상에서 이같은 절충안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국립외교원 민정훈 교수는 "북미간 기싸움이 팽팽해 서로가 요구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영역도 머뭇거리며 신중한 상황"이라며 "이번 방한을 계기로 그간 협의된 북한의 입장을 미국에 전하고, 미국의 입장을 다시 북한에 전달하는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 비건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