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8년 10월 30일 (화)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이만기 (인제대 교수, 전 씨름선수)
◆ 이만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정관용> 우리가 유네스코 측에 신청한 거죠,그러니까?
◆ 이만기> 그렇죠. 지난 2014년도에 저희들이 대한씨름협회하고 문화재청이 같이 공동으로 해서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2016년도에 공식적으로 서류가 제출이 돼서 그렇게 된 거죠.
◇ 정관용> 북한은 언제 신청했답니까?
◆ 이만기> 북한은 종전에 한 번 했다가 남자들만 하는 경기라고 해서 다시 이제 권고사항에서 안 내려졌고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같이 아마 북한에 신청을 하고 저희도 해서 권고가 내려졌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유네스코는 뭐라고 하면서 이건 충분히 등재될 만하다라고 판단을 내린 겁니까? 어떤 점을 높이 산 거예요?
◆ 이만기> 아무래도 한국 우리나라 씨름 하면 정말 세시풍속, 전통문화놀이이지 않습니까? 옛날서부터 윗대 옛날 조상님들 선조 때부터 정말 씨름하면 단오나 추석 이런 큰 경사에서 늘 씨름이 행해져 왔고 이런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해서도 해화나 그림이나 김홍도 선생님 그림이나 이런 여러 가지 역사성을 놓고 봤을 때 명확하게 국민들 속에 영원히 이렇게 같이 전승되고 왔다는 그런 평가가 이번에 제대로 내려졌던 것 같아요.
◇ 정관용> 남과 북의 지금 현재 씨름이 사실 똑같습니까? 조금 달라져 있습니까?
◆ 이만기> 좀 다릅니다. 저희들하고 옛날에 나윤출 선배님이라고 하시는 분이 북한을 가서 씨름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었는데요. 지금 씨름은 똑같습니다. 샅바 차는 것도 똑같은데 약간 룰이 좀 다르고요. 그다음에 명칭이 아무래도 언어상의 그런 관계가 있다 보니까 좀 남북한의 언어가 다르겠고 그다음에 저희들은 팬티 하나만 입고 하는 데 비해서 북한은 아래 위로 옷을 다 입고 그렇게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체급도 아무래도 저희들 대한민국이 좀 체중이 많이 나가고 덩치가 크다 보니까 그런 체중에서 오는 차이, 등급의 차이 이런 건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하는 기술들은 거의 다 지금 현재 저희들 씨름도 약 5가지 유형이 있었는데요. 옛날에 왼씨름, 오른씨름, 띠씨름, 바씨름, 통씨름 이렇게 있었는데 지금 북한에서도 옛날에 호남 지방에서 썼던 왼씨름, 왼씨름이 좀 통일이 돼서 북한에도 왼씨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걸 왼씨름이라고 하는 게 왜 그런 거예요? 왼쪽을 어디에다가 잡는다. 이런 겁니까?
◆ 이만기> 상대방 왼쪽으로 내가 머리가 간다고 해서 왼씨름이 된 거죠.
◇ 정관용> 지금 우리 한국에서 하는 씨름대회 룰도 왼씨름인 거죠?
◆ 이만기> 지금 왼씨름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이만기> 왼쪽 씨름이라고 해서 왼샅바가다리 샅바가 되고 축이 되고 해서 왼씨름으로통일돼서 지금 아마 1927년도 전조선체육대회를 하면서 그때 씨름이 왼씨름으로 통일이 되고 해서 지금까지 전래돼 오고 있습니다.
◆ 이만기> 복장은 저희들은 위에 팬티를 입고 옷을 안 입는 데 비해서 북한은 위에 옷을 입고 모란봉경기장 같은 데 거기에서 아마 씨름경기가 크게 성행이 되고 있는데 1960년대, 70년대 이때도 1등 할 때는 황소를 줬지 않습니까. 지금도 북한 7년 전 이때 씨름한 경기를 보면 그런 경기장에서 할 때 황소를 줬고 또 황소에다가 좀 더 아마 북한 주민들 씨름을 더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황금으로 된 방울 있지 않습니까. 방울을 소의 목에 걸어서 같이 이렇게 시상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했는데 아마 씨름이 한국에도 그때 당시 참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도 북한에는 명절의 단오 때 특히 단오 때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많은 평양 시민들, 북한 주민들이 씨름을 즐기고 있습니다.
◇ 정관용> 지금 현 시점으로 놓고 보면 우리 이만기 교수가 전성기 달리실 때 정말 대한민국은 씨름으로 들끓었던 때인데 요즘 그때에 비하면 조금 인기가 식었잖아요.
◆ 이만기> 그렇죠. 지금 우리 씨름이 1983년도에 첫 천하장사가 배출이 돼서 한 15년, 20년 정도 많은 국민들 속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가 시대가 급변하면서 많은 세상이 바뀌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스포츠도 바뀌게 되고 문화도 환경도 다 바뀌는 그런 시대 속에 살아오면서 씨름이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우리 국민들 그냥 나이 많으신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만 생각을 하고 계속 오다가 젊은 세대들로 교체할 수 있는 그 세대간의 교체할 수 있는 그런 어떤 전략적 정책이라든지 어떤 씨름 경기기술 또 이런 것들을 좀 개발을 못하고 그냥 했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우리 젊은 분들한테 외면을 당하지 않았던가. 특히 프로야구나, 축구 워낙 외국에 있는 스포츠들이 들어오고 또 80년도 올림픽 이후에 생활스포츠가 많이 활성화됐지 않습니까.
◇ 정관용> 맞아요.
◆ 이만기> 그러다 보니까 생활스포츠로 빨리 자리매김을 못했던 것 이런 여러 가지 원인들이 아마 씨름을 다시 태울 수 있는 그런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이번에 무형문화재로 되는 계기로 다시 씨름이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고 이만기 교수 선수 시절에 북한 가서 북한 선수들하고 경기해 보거나 이런 경험은 전혀 없으신 거죠?
◆ 이만기> 제가 한 번 성사를 시키려고 저희들이 북한 선수단이 제 기억으로는 95~96년도쯤인가 제주도에서 한번 생활축전대회를 할 적에 그때 북한 선수들이 한번 와서 저희 아마추어 선수들하고 경기를 한 적 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이만기> 있는데 워낙 그다음에 저희들이 프로선수들하고 한번 북한 씨름하고 교류를 하려고 그때 아마 노무현 정부 시절인 것 같습니다.
◆ 이만기> 그때 저희들이 아마 파견을 해서 금강산에서 북한 측 대표와 한번 만나서 한국 씨름과 북한 씨름 교류를 하자는 그런 제안을 해서 만났었는데 이게 뭐가 문제가 되냐면 저희들이 갈 때는 국민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프로선수들 유명한 선수들. 그때만 하더라도 김정필, 이태현, 백승일이런 선수들이 활약을 하고 있었을 때인데 우리 국민들이 이런 선수를 봐야 되고 북한 쪽에서는 이런 선수랑 붙였다가는 도저히 되지 않으니까.
◇ 정관용> 수준 차이가.
◆ 이만기>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요.
◇ 정관용> 그러니까 한마디로 북한은 지금까지도 많이들 즐기기는 하지만 프로급의 수준으로 가면 실력은 우리한테 안 되는 거로군요.
◆ 이만기> 그렇죠. 아무래도 체중 차이와 체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 정관용>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남북 공동등재를 하려면 일단 남북이 협의를 해서 우리 측도 북한 쪽도 단독으로 신청한 걸 철회하고 공동 신청을 다시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이만기> 저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씨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국가는 물론 다르게 돼 있지만 씨름은 하나지 않습니까. 남북의 씨름은 하나인데 이 씨름을 우리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재를 한다면 남북이 공동이 돼서 해야 된다고 봅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이만기> 그래서 아마 저희들 문화재청하고 또 북한 측의 관계자분들하고 또 유네스코 사무국이 아마 이렇게 한다면 특히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좋은 말씀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놓고 본다면 아마 저희들 정부 측에서는 문화재청에서 아마 북한 쪽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면 충분히 지금 서로 각각 따로 등재 신청을 했는데 이 등재 신청을 공동으로 한다면 유네스코에서 특히 더 어차피 지금 북한도 지금 현재 권고사항을 해 놓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두 군데 다 했기 때문에 이게 하나로 되면 오히려 더 빠르게 아마 12월 1일날 아프리카에서 한다는데 그게 더 빨리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 정관용> 빨리 좀 협의가 진행됐으면 좋겠고 이걸 계기로 이만기 교수도 오래간만에 평양 가셔서 한번 해 보시죠, 딱. 샅바 매시고.
◆ 이만기> 아마 저도 나이가 있으니까 지금 젊은 친구들이랑 하면 비슷할까요. (웃음)
◇ 정관용>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이만기> 감사합니다.
◇ 정관용> 인제대학교 이만기 교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