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허가 뒤 정식 허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관련 부처의 협조 및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관 부처는 정작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나 몰라라 태도로 일관하면서 임시허가 2호 사업이 정식 허가를 받을 동안, 1호 사업은 3년이 넘도록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부, 3년 전 블루투스 전자저울에 '임시허가 1호'…"신속한 시장 진입 약속했지만"
3년 전 정부는(당시 미래부) 중소벤처기업인 (주)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전자저울 기술 및 농업 모바일 서비스'에 제 1호 임시허가를 부여했다. 그린스케일은 전자저울 측정값을 블루투스로 스마트 기기에 전송, 데이터를 모바일 앱 등에 저장 및 관리·분석하는 '농산물 이력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던 중 2015년 10월 12일 정부의 '신속처리 및 임시허가' 제도의 첫 번째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 물꼬를 텄다. '신속처리 및 임시허가'는 <정보통신(ICT)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신규 ICT 기술이나 서비스를 개발한 사업자가 정부에 허가 필요 여부를 묻고(신속처리), 시장 출시에 필요한 법령상 규정이 마련돼있지 않다면 시장 출시가 가능하도록 임시로 허가해주는 제도다.
임시허가 유효기간은 1년이다. 다만, 1회에 한해 연장할 수 있어 최대 2년간 사업을 할 수 있다. 정부는 2년 동안 관련 부처와 함께 정식허가를 위한 법령개정 등을 추진한다. 당시 미래부는 그린스케일이 임시허가에서 정식허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을 소관 부처로 보고, 협의를 진행했다.
◇ 국가기술표준원 '업무 연관성 인정' 임시허가 진행, 정식허가선 "소관 업무 아냐"
즉, 계량기 형식 승인에서는 계량의 정확성과 내구성을 중심으로 시험·검증은 하고 있지만 '전자파 안전성'이나 '통신 및 데이터 무결성' 등은 현재 검사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 만약 계량기인 저울과 스마트기기 간 데이터 전송 과정에서 수치가 조작되거나 왜곡됐을 때 처벌 등의 규제가 필요하지만 현행법에는 이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이다.
즉, 기존 법제도의 미비로 그린스케일은 우선 임시 허가를 취득했다. 국표원이 관련 규범을 마련해줘야만 정식 허가가 가능했다. 국표원은 임시 허가 전 신속처리 과정에서 업무 연관성과 새로운 기술 규격 등을 정립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임시허가에 참여했다.
그러나 국표원은 거기까지였다. 그린스케일 설완석 사장은 "임시허가 이후 국표원이 '우리더러 기술표준화를 해달라는 거냐. 그럴 수 없다'면서 선을 그었고, 한 술 더 떠 '소관 업무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면서 "임시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2017년 10월 11일까지 정식 허가를 위한 공식 절차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설 사장은 "정부까지 나서서, 정식 허가를 위한 계량법 정비를 국표원에 전달해 입법화를 추진하려했지만, 국표원은 오히려 관련 책임을 과기부에 전가하려 했다"면서 "지금도 계량기인 전자저울에서 블루투스로 전송되는 데이터에 대한 업무가 계량측정제도과의 소관업무인지 관련 업계에 물어 보겠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농림부 "이력추적은 우리 소관인데, 전자저울은 아냐"…이력추적시스템 '무용지물' 국감서 탄로나기도
미래부는 이를 바탕으로 '소관 및 허가 필요 여부에 대한 검토 의견'을 농림부에 정식 공문으로 확인요청했지만 처음에 보였던 긍정적인 태도와 달리 답변을 아예 하지 않았다. 결국 임시허가조차 국표원만 참여하는 절름발이 상태로 진행되고 말았다.
그린스케일 측은 "처음 미래부와 협의할 때만 해도 농림부는 시스템 연계 요청과 관련한 내부 협조를 약속해놓고, '회사의 보유 기술이 이력제와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 '특정 기업의 기술을 지원하다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사업은 임시허가 뒤에도 3년 넘게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이처럼 농림부가 뒷짐을 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게 설 사장의 주장이다.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이 부실하게 운영돼 연계가 처음부터 불가능했고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박완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총 18억원의 혈세가 투입된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 '팜투테이블'의 하루 평균 이용자는 최근 3년간(2015년~2017년 6월) 24명에 불과했다. 팜투테이블 회원 수도 2012년 10만 5187명에서 2016년 3만 1662명으로 70% 가량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팜투테이블은 농산물이력추적관리제도를 전산화해 등록자들이 편리하게 이력정보를 관리하고, 바이어나 소비자들도 이력정보를 직접 조회해 농산물의 원활한 판매를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농림부가 "소관 부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그린스케일의 사업과 같은 맥락이다.
설 사장은 "농림부가 농산물이력추적시스템과 민간 정보시스템의 연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부실 행정을 덮기 위함"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지적한 박 의원도 국감에서 "농림부의 방관과 방치가 문제"라며 "농산물이력추적관리시스템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활성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 ICT 융합활성화법, 3년 넘도록 취지 못 살려 '유명무실' 논란…"근본적 대책 필요"
그는 "현재 저울 분야는 저울 형식승인 대상 개편이나 전자파 적합성 중복인증 해소, 차세대 계량체계 대응 등이 필요한데 이는 타 계량기와도 관련되는 사항으로 국표원이 이들 계량값 사용에도 관여해야하는지조차 범위 설정도 돼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린스케일 외 마땅한 수요도 없는데 국민 경제 생활을 보호하는 다른 산업진흥법도 아니고 이를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저울 제조업자나 사업자, 농가 등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해 관련 사항을 논의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농림부도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한 것은 저울이라는 계량기에 대한 부분"이라면서 "농산물 이력관리추적시스템은 농림부 소관은 맞지만, 경운기 같은 농기계 등이 아닌 블루투스 통신기반에 따른 전자저울을 농림부에서 형식 승인 또는 인증하기는 힘들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신속처리 및 임시허가 제도'는 2015년 1월 제도 시행부터 3년이 넘도록 정부가 판단한 소관부처에서는 제도상 걸림돌이 되는 법적 장애물을 제거하거나 관련 고시를 개정하는 등 ICT 융합 활성화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임시허가된 사례도 고작 세 건에 불과하다. 이중 정식허가로 넘어간 것은 단 한 건밖에 없다. 그린스케일 사례처럼 처리기간도 법령에 규정된 기간을 초과하는 등 실효성이 부족하단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설 대표는 "그린스케일의 사업은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활발히 추진중인 스마트 미터링과 블록체인 기반 이력추적시스템을 위한 IoT 앱을 모두 담고 있다"면서 "국가의 특별법을 믿고 이를 준수했지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련 부처의 비협조와 떠넘기기로 수억원의 손해만 떠안은 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업계 전문가는 "임시허가의 가장 큰 목적은 ICT 융합 기술 및 서비스의 시장 진출을 제한적으로도 허용해 해당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규율 체계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면서 "소관 부처와 근거 법령이 존재하지만 규제가 부적합하거나 불합리한 경우 안정성 확보를 전제로 허가 등의 특례를 부여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