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손 "복면과 대중의 유쾌한 밀당, 진실에 대한 은유죠"

'쇼미더머니 777'의 분홍색 복면 래퍼…정체 '분명'해도 속아주는 유희
'소년점프' 유튜브 2천500만뷰·댓글 8만5천개…"존재가 하찮아 공감된대요"

평소 알던 번호로 전화했는데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복면 래퍼 마미손이 받았다.

래퍼 매드클라운이 아니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란 정색. "그렇다면, 처음 뵙겠다"라고 인사하곤 "계획대로 되고 있나"라고 물었다.

"지금까진… 계획대로 되고 있습니다."('소년점프' 노래 가사)

마미손은 지난 9월 엠넷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이하 '쇼미')에 분홍색 복면을 쓰고 등장했다. 고무장갑 브랜드 마미손이란 예명으로 출연한 그는 가사 실수로 초반 탈락했지만 단연 이번 시즌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귀에 때려 박는' 명쾌한 발음, 속도감 있는 플로(흐름)는 누가 봐도 지난 시즌5에서 프로듀서로 출연한 매드클라운. 그러나 도전자로 지원한 마미손은 "복면은 예술적인 장치이자, 저를 위한 즐거움이고 놀이"라며 끝내 복면을 벗지 않았다. 매드클라운도 SNS에 "엮지 말아 주세요. 불쾌하거든요"란 반박 글로 응수했다.

정체 '분명'하지만, 모두 함께 '속아주자'는 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마미손이 경연에서 떨어지고서다.

마미손은 '쇼미' 탈락 직후 유튜브에 '소년점프'란 B급 감성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탈락이란 쓰라린 좌절을 맛본 마미손이 자신을 떨어뜨린 래퍼들을 악당으로 규정하고 '한국 힙합 망해라'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스토리다.

이 뮤직비디오는 한달여 만에 유튜브 2천500만뷰를 돌파했다. 댓글은 무려 약 8만5천개가 달렸다. '소년점프'에서 그의 어설픈 '엉거주춤'을 패러디한 영상, 약 10개국 언어로 번역된 영상도 잇달았다. 동영상 단 2개가 공개된 마미손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순식간에 34만여 명이 됐다. '빅 픽처'를 위한 의도적인 탈락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 "재주는 마미손이 부리고, 금전 이득은 매드클라운이"

마미손은 왜 복면을 썼을까. 그는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는 수단으로 해방감이 느껴진다"라고 했다.

"분홍색 복면은 정체를 가리는데 가장 가성비 좋은 수단이었죠. 친구가 복면 쓴 제 모습이 마미손 같다고 해 즉흥적으로 이름을 붙였고요. 이 고무장갑 브랜드는 시대적인 아이콘 중 하나잖아요. 어린 시절 어머니 어깨가 자주 아파 설거지를 많이 도와드렸는데 제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마미손과 다시 관계를 맺을 줄 몰랐네요.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많은 누리꾼처럼 놀이에 동참하고자 마미손과 매드클라운의 동일인물 설에 대한 '밀당'을 해봤다.

"해당 브랜드 업체에서 감사의 의미로 보낸 600장의 마미손은 어떻게 했나요?"

"매드클라운 주소로 보내 어떻게 소비했는지 잘 모르겠어요."(마미손)

행사 섭외가 줄을 잇겠다고 하자 "저는 행사를 한 적이 없다"며 "듣기로 매드클라운에게 행사 섭외가 많이 간다고 한다. 재주는 마미손이 부리고 금전적인 이득은 매드클라운이 가져가는 것 같다"고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마미손은 미혼인가"란 물음엔 "사생활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소년점프' 뮤직비디오에 달리는 '진실 요구' 댓글은 마미손과 누리꾼의 유희를 돕고 있다.

'(유튜브에) 매드클라운 쳤는데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소년점프' 작사·작곡자가 매드클라운으로 돼 있다'

마미손은 저작권에 대해 "매드클라운이 악당 짓을 한 것이다. 내 저작권을 가로챘다"고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딱히 되찾겠다고 생각 안 한 건, 정식 음원을 안 내 매드클라운이 가져갈 저작권 수입이 없을 거예요. 음원으로 공개하지 않은 건, 음원 서비스 사업자가 가져가는 분배 비율에도 문제가 있어서…. 모든 창작자에게 열려있는 유튜브란 새로운 플랫폼에서 실험해 보고 싶었죠."

◇ "소년만화잡지서 모티프 얻어…악당은 너무 많죠"

'소년점프'는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중독성이 있다. '오케이(OK) 계획대로 되고 있어'란 가사는 누리꾼 사이 유행어가 됐다.

영상에서 마미손은 초반에 고통받고, 좌절을 딛고 성장하는 소년만화잡지 속 주인공과 닮았다. '스윙스 기리 팔로 코쿤' 등 자신을 떨어뜨린 '쇼미' 프로듀서들을 악당으로 칭하며 '한국 힙합 망해라', '내가 여기서 쓰러질 것 같냐'며 '모험은 시작됐다'고 진지하게 외친다.


마미손은 "소년만화잡지가 모티프와 콘셉트의 주된 장치가 됐다"며 "주인공들이 고통 앞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서듯이 '쇼미'에서 떨어졌지만 그걸 통해 성장하는 것이 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규정하는 악당은 누구일까. 그는 BBC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음원사이트를 악당으로 꼬집기도 했다.

"악당은 너무 많아요. 전형적인 습성이 언제나 정체가 분명하다는 점이죠. 우린 악당들에게 당당하게 분노하며 손가락질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해도 창피해하지 않아요. 한두명이 비겁할 때는 도덕적으로 부끄럽다고 느끼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비겁해지기로 했을 때는 창피함을 못 느끼니까요. 그래서 악당들은 뻔뻔하게도 계속 아니라고 하며 사람들을 비웃죠."

랩 가사뿐 아니라 이 영상의 '입덕' 포인트 중 하나는 마미손에 대한 '짠한' 공감. 만화 속 주인공과 달리 마미손은 유치하고 어설프다. 한강 공원에서 에어로빅 하는 아주머니들의 율동을 엉거주춤하게 따라 추고, 바닥에 주저앉아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담그는 모습까지….

마미손은 "사람들이 이렇게 존재가 하찮을 수 없다고 한다"고 웃었다.

"하려고 하는데 다 안될 것 같고, 그런데 빨빨거리면서 악착같이 향해 가는 모습에서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재미를 느끼신다면 시도는 성공적인 거라 생각해요."

공감의 크기는 싸이의 B급 감성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처럼 심상치 않은 유튜브 조회수 상승세로 나타났다.

그는 "'강남스타일'은 단일 콘텐츠만으로 외국인에게 어필하는 재미 요소가 있는데 '소년점프'를 이해하려면 '쇼미'에서 떨어지고 좌절한 마미손에 대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스토리가 있단 점에서 외국인이 접할 땐 웃긴 동영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찰리 래플린 같은 즐거움 주고 싶어…새 작업물 11월 공개"

화제가 되면서 마미손의 복면은 '2018년 최고의 마케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마미손은 당초 '쇼미' 본선에서 퍼포먼스의 최종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 무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으나 떨어지면서 계획이 틀어졌고, 최선을 다해 변수에 대응하다 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부가적으로 생겨났다는 것.

마미손은 이런 시도에 대해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엔터테이너로서 궁극적인 보람은 뭘 까란 생각을 했고, 메시지가 담긴 즐거움을 주는 찰리 채플린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뻔뻔한 듯 느껴지는, 유쾌한 진실 게임에는 꽤 진지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마미손이란 캐릭터를 두고 놀이를 즐기는 풍경은 하나의 커다란 은유"라는 것. 그는 "완성된 작업물이 11월 공개되면 사람들이 은유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에둘러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진실이 요구되는 상황들이 있고, 그래야 정의가 구현되잖아요. 사람들은 놀이를 즐기듯 마미손 복면 뒤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려 하죠. 마미손의 진실을 갈구한 것처럼 사람들은 과연 정말로 진실이 세상 밖으로 밝혀져야 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이었나란 걸 묻고 싶어요."

언제쯤 복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할 것인지 묻자 "스스로 즐기지 못할 때"라고 답했다.

그는 "마미손은 언제까지나 재미를 추구하며 활동할 것"이라며 "'소년점프'가 이만큼 됐으니 다음에는 어떻게 더 잘될까를 고민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제가 즐기지 못하면 사람들도 느낀다. 그러면 '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마미손은 어떤 사람일까.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죠. 노래를 너무 부르고 싶어 인디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음치고요. 하지만 음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앨범을 내요. 다른 사람들 의식 안 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거든요."

그와 친분있다는 몇몇 동료 가수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 '끼'가 있는 사람"이냐고. 답은 한결 같았다.

"몰랐어요? 어마어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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