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북 제재와 관련해 아무런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는데 대한 북한의 불만이 남북 교류협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구도가 잠시 주춤하고 있는 분위기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북미 양측은 실무 협상팀을 꾸려 구체적인 비핵화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북한은 폭파된 풍계리 핵실험장과 해체 중인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에 전문가들의 참관을 허용하겠다고도 밝혔지만 일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실무협상이 돌아가지 않자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9일 고위급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이 역시 북한은 응답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종전선언은 기정사실화하고 진전된 비핵화의 조건으로 대북 제재 해제나 완화를 요구하고 미국은 미국대로 그에 상응하는 중대한 초기 조치를 요구하면서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연구원 홍민 연구위원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백악관 내 강경파들이 폼페이오 4차 방북 때 북한과 합의한 내용에다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했고,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북한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일 "미국이 평양에 왔을 때 한 말과 워싱턴에 돌아갔을 때 한 말이 다르다"며 비난 논평을 보도했다.
"미국이 앞에서는 선의의 조치들에 박수를 치고 뒤에 돌아가서는 압박의 몽둥이를 계속 휘두르겠다고 하고 있으니 두 얼굴 중에 어느 얼굴과 상대해야 좋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는 대북 제재 완화 논의없이는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은 남북 관계에서도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산림협력 분과회담과 군사 분야 외에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는 유엔군사령부의 양해 하에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 공동조사를 지난 26일에 갖자고 북측에 제안하고, 보건협력 분과회담도 24일에 열자고 제의했으나 더 기다려보자는 얘기만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중으로 갖기로 했던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도 북한의 호응이 없어 사실상 무산됐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조치 없이는 남북간에 구체적인 경협 추진도 어렵다며 미국의 중간선거 이전까지는 남측과의 교류 협력보다는 미국과의 물밑 줄다리기에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림협력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이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북측은 "소나무처럼 외풍과 역풍에도 흔들림없이 나가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부터 기대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묘장 현대화에 필요한 장비 제공 등과 관련해 우리측이 제재 위반 우려를 제기하며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자 공동보도문은 채택했지만 굳은 표정으로 회담장을 나가버렸다.
정부 관계자는 "보건의료와 체육회담, 철도 공동조사 날짜 등을 제안하고 있지만 북한에서 응답이 없다"며 "남북간의 문제라기보다는 북한은 여전히 제재 완화에 부정적인 미국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이같은 상황이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매우 민감한 국면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