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이 글은 국내 발달장애 청년들의 자립에 필요한 '희망의 스마트팜' 조성을 위해 CBS와 푸르메재단이 함께 마련한 연속 기획입니다. ① '말아톤' 13년 후…고단한 삶속에 피워낸 작은 희망 ②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못 뗀 19년…발달장애 엄마들 ③ 발달장애 청년 위한 일자리, 푸르메재단이 만듭니다 ④ 늙어가는 엄마는 점점 겁이 납니다, 아들 때문에 ⑤ "내 아이는 자기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안 되나요?" ⑥ 35세가 되면 일터에서 밀려 집으로 쫓겨나는 그들 ⑦ 10년간 10억 기부 기업인 "행복한 삶 비결은 나눔" ⑧ 발달장애 청년들의 버섯 스마트팜 체험기 (계속) |
그 중 몇몇은 이미 버섯으로 가득한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나르며 구슬땀을 흘린다. 때론 옆사람의 작업을 유심히 관찰하며 한 목소리 보태기도 한다. 얼굴 표정만큼 다들 열심이다.
어느 날 푸르메재단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주에 있는 땅을 푸르메재단이 건립하겠다는 희망의 스마트팜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애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조성한 농장이라 스마트팜 설비까지 갖춰져 있지만 운영경험 부족으로 거의 중단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푸르메재단으로서는 머리로만 구상했던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스마트팜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푸르메재단 직원들이 '우영농원'을 처음 방문한 건 추석 직전이었다.
버섯농장에서 흔히 보는 거대한 통나무 대신 공장에서나 볼 법한 기계설비와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배지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스위치만으로 물과 온도를 조절하고, 허리 높이에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게 조성됐다. 노동력은 줄고 생산성이 높다는 스마트팜의 강점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종로장애인복지관에 다니는 장애인 직원들이 스마트팜 체험 겸 지원군으로 여주를 찾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무렵이다.
손이 닿지 않아 배지와 분리하기가 어려워지자 점점 몸을 비틀며 지루해하는 이들이 나왔다. 지체장애 아들의 조력자로 함께 방문한 어머니 권옥미 씨(59 · 정해영 엄마)가 먼저 눈치를 채고 버섯이 가득 찬 박스를 옮기라고 지시한다. 일터를 잠시나마 벗어나게 된 것에 신난 친구를 붙들고 소감을 물었다.
"학교 다니면서 과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 버섯에 대해서 잘 모르니 좀 어려운 것 같아요. 다음에는 버섯 공부를 더 하고 오려고요."
누구라도 따기 힘든 위치의 버섯이겠건만 공부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그 심성이 예쁘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버섯을 따는 데에만 집중하는 청년들도 있다. 어느새 나란히 줄을 선 버섯 배지들이 민둥산마냥 매끈해졌다. 그제야 다들 허리를 펴고 손을 닦으러 나간다.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첫 스마트팜 체험을 마친 권 씨는 감탄과 아쉬움을 동시에 내비쳤다.
"깨끗한 자연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좋은 공기 마시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일을 하니까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버섯이 거무죽죽한 색을 띄고 있어 아이들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좀 느꼈어요. 토마토나 딸기와 같은 작물을 재배하면 색도 예쁘고 따기도 쉬워서 훨씬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상태가 좋은 3급 아이들은 보호작업장 등 갈 곳은 많아요. 돈을 너무 적게 주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요. 더 큰 문제는 1,2급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이에요. 20년 가까이 교육을 시켜놨는데 결국 갈 데가 없어 주간보호센터로 보낼 수밖에 없어요. 퇴행은 시간문제죠."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수많은 부모들이 걱정하던 아이들, 발달장애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경계권 아이들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한 번 흘러나왔다.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주기보다 비장애인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장애청년들에게만 일자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복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장애 부모들은 매순간 의문을 품고 있었다.
비장애인도 힘겨워하는 8시간 풀타임 근무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무리한 일이다. 그렇다고 반타임 근무만 하고 퇴근하면 부모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자녀가 퇴근하는 순간 부모의 돌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자녀 엄마들은 희망의 스마트팜이 일터와 보호시설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모아 이야기한다. 권 씨 역시 같은 의견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시간대별로 두 그룹을 나눠 1차 타임 아이들이 일할 동안 2차 타임 아이들에게는 수영 같은 체육이나 그리기 등의 미술활동을 하게끔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2차 타임까지 마치면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장애 아이도 부모도 행복할 수 있어요."
장애자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데 평생을 고민해온 어머니 답게 그의 생각은 깊고도 넓었다. 그리고 확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