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3년이 채 흐르지 않은 지금, 인공지능은 가전 등과 결합해 우리네 삶의 방식마저 바꾸고 있다. 인류와 인공지능의 미래를 두고 '공존의 유토피아'와 '대립의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다양한 진단과 예측을 내놓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 19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에서 '지능의 진화와 인간환경의 확장'을 주제로 열린 제2회 인공지능인문학 전국학술대회도 그랬다. 이날 '인공지능은 창조자를 능가할 것인가'라는 기조발제를 맡은 인하대 철학과 고인석 교수는 "우리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을 비교하면서도 인공지능이 누구의, 혹은 무엇의 지능인지 따져묻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고 교수는 "그러나 그 물음은 꼭 필요하다. 지능은 무엇인가의, 혹은 누군가의 지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엔가 지능이 현존한다면 거기에는 지능을 가진 존재, 즉 지능적 존재가 있어야 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능은 그 존재의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는 지능은 생명체의 것, 특히 동물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뇌를 중심으로 하는 신경체계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능력이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은 기계에 구현된다. 기계가 보이는 지능적 현상이 진정한 지능의 존재를 의미하는지 우리는 묻고 따질 수 있고, 이 물음 역시 결국엔 개념 사용에 관한 결정의 문제에 귀착할 것이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그 결정이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을 하나씩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임의적인 결정이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인 결정이 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며 이른바 인공지능의 개념 설정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화가 낳은 수많은 종류의 생명 가운데서도 일부만이 지능을 가진 주체들이라고 인정된다. 컴퓨터나 로봇이 애초에 그런 주체가 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는 없다고 해도, 어떤 로봇을 주체로 인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분명하고 적극적인 근거에서 자케 드로가 만든 소년(18세기 스위스 시계공 피에르 자케 드로가 만든 자동인형)이나 내 컴퓨터에 있는 체스 프로그램과 달리 존속하는 주체인지에 대한 소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능이 본래 동물 신체에 귀속된 능력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점을 여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고 교수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능은 그것을 가진 주체의 생존과 번식의 성패를 좌우한다. 지능은 둘레세계, 즉 외부 환경을 이해하는 능력이고, 이러한 지능의 관념은 그 환경의 한가운데에 놓인 주체의 존재를 요청한다. 이 주체는 우리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속성을 활용해 그것 자체 혹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읽고 해석한다."
◇ "인공지능의 사회적 관리…문학적 상상력을 작동원리로 삼아선 안 돼"
결국 "우리 같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도무지 조절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 사고가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사고"라는 이야기다.
또한 "인공지능이나 지능형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우리는 인간과 다르면서도 인간의 마음에 상응하는 어떤 것을 가진 '낯선 주체'가 어느 새 우리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하는 듯하다"며 "이 기술의 발달을 검토하고 전망하는 일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고찰과 그것에 근거한 사회적 차원의 관리가 문학적 상상력을 작동원리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자연과 사회의 현실을 넘어 최대한 자유롭게 작동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인문학 고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길인 동시에 인문학의 사회적 기여를 증진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렇게 펼쳐진 상상력의 산물들은 현실을 해석하고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생각의 토대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인 반면, 그 자체가 사회적 실천의 준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러한 인문학적 사유의 산물들은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의 빛을 발할 것이고, 우리는 그것들에 통일성이나 어떤 수렴의 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반면에 사회적 실천의 문제들은 비록 언제라도 더 나은 다음 해법에 자리를 내어줄 잠정적인 깃일지라도 공유된 해법을 요청한다. 우리는 항상 그 지점에 동원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모아 공유할 만한 최선의 해법을 찾고 현실에 적용한다"고 부연했다.
◇ 인공지능 개념·윤리원칙 설정…분야·세대 따라 학계서도 의견 분분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그것들이 그 자체로 그런 일을 해내는 주체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도구로 인식됐고, 그리하여 그런 것들이 지닌 힘과 하는 일이 인간들 자신이 지닌 힘과 성과의 확장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러한 초인적 작용의 과정이 근대과학의 방식으로는 아니더라도 어떤 합리성의 수준에서 이해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통해 인공지능 체계나 인공지능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전제를 내놨다.
"첫째는 새로운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신기하고 강력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사용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제어가능성과 더 직접 관련된 둘째 가르침은 기술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제어의 선행 조건이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응용해 말하자면,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기술을 개발해 활용해야 한다."
기조발제 뒤 한 청중은, 수많은 정보가 모이는 구글이나 오픈소스(무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소프트웨어) 등으로 지능적인 시스템의 초석이 만들어지고 있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에 고 교수는 "우리는 도서관을 주체로 보지 않는다"며 "지능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그것(인공지능)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우리가 이해하는 지능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라고 답했다.
'구글·아마존 등의 맞춤화 서비스에 유도돼 관련 상품에 지배되고 종속되는 경향이 나오는데 (인공지능을) 막연하게 도구로 상정하는 것이 개념을 약화시킨다'는 의견에는 "사회 변화에 대해 말하기에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것이 올바른 지능인가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현상이 생긴다면 공학자들이 함께 논의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일반 대중은 SF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의 영향으로 인공지능을 의인화하는 데 익숙하다. 인공지능을 지능으로 규정할 것인지, 단지 도구에 불과한지 등의 문제를 대하는 대중과 학계의 괴리만큼이나, 학계 내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부딪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학자는 "학계에서는 인공지능의 개념이나 윤리원칙 등을 세우는 데 있어 공학·문학·철학 등 연구 분야는 물론, 세대별로도 각기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지금 청소년 세대가 일상에서 경험으로 얻는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은 이전 세대, 그보다 더 이전 세대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인공지능이라 부르는 것을 경계하거나 단순히 도구로 봐야 한다는 시각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