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위가 구성돼 있지만 대기업들이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담당자만 내보내는 등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 중소기업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 중소기업에 기술자료 요구 끊이지 않아
윤활 급유방식 구조를 개선한 전동실린더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 A사는 대기업인 B사의 요청을 받고 내부구조를 B사에 공개했다고 전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A사는 C사에서 동일한 구조의 전동실린더를 B사에 납품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A사는 B사가 C사로 기술자료를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자료 폐기, 향후 제3자에 대한 기술 이전 금지 및 기술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청했다.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는 손해배상 지급 등에 대한 조정안을 제시했으나 B사는 수용을 거부했다.
A사는 결국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중재위의 조정이 불성립 된 지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중소기업인 D사도 대기업 E사에 게임개발 사업을 제휴하자고 제안했다가 E사로부터 실행파일 등 게임 관련 기술자료를 건네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E사는 사업제휴가 어렵다는 의사를 D사에 통보한 이후 관련 기술자료를 자회사인 F사에 제공, 일본에서 유사한 모바일 게임을 출시했다.
D사는 F사가 일본에서 출시한 모바일 게임 총 매출액 중 일부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해 중재위가 조정에 들어갔다.
중재위에 조정신청이 접수 되고 9개월여가 흐른 시점인 지난해 6월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 조정이 종료됐다.
지난해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중소기업 2293곳을 조사한 결과 상당수 기업이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중소기업의 14.3%가 대기업 등 거래기업으로부터 중요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중소기업 52개사에서 78건의 기술유출이 있었고 총 피해금액은 1022억 원으로 집계됐다. 건당 피해규모는 13억 1천만 원에 이른다.
◇ 소송으로 가면 입증·비용 중소기업에 큰 부담
22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2015년부터 지난 9월까지 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한 사례는 73건에 이른다.
중소기업 기술유출 관련 조정신청건수는 2015년 22건에서 2016년에 17건으로 줄었다가 2017년 19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15건이 접수됐다.
정보통신 분야가 28건으로 가장 많고 전기·전자 14건, 기계·소재 11건, 에너지·자원 10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중재위에서 조정안을 제시한 34건 가운데 성립되지 않은 경우가 23건(67.6%), 성립한 경우는 11건(32.4%)에 그쳤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재위에서 2~3차례 회의를 해서 조정안을 제시하지만 기업 당사자가 수용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중재위의 중소기업 기술유출 조정이 쉽지 않은 것은 대기업들의 소극적인 태도가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매출에 큰 타격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일단 사실관계를 부인하면서 시간을 끄는 전략을 펼친다는 지적이다.
중재위에는 대기업들이 실질 권한이 없는 담당 부장이나 상무 등을 내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대표이사급이 중재위에 나온 경우는 한 번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 관계자는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사람이 나와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다"며 "실질적인 대응을 할 수 없어 조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중재위에서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로 소송으로 가게 된다. 소송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중소기업엔 큰 부담이다.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입증도 쉽지 않다.
한편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중대 범죄행위로 보고 기술침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