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탈락 위기에 놓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의 '벼랑 끝 승부' 무실점 행진이 끝난 날,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마침내 포스트시즌 첫 선발승을 따내며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프라이스는 19일(한국시간) 미국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2018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휴스턴과의 원정 5차전에서 6이닝동안 개인 포스트시즌 최다인 9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며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프라이스는 안타를 3개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볼넷은 1개도 없었다. 강력한 휴스턴 타선은 6회까지 2루를 한번밖에 밟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프라이스의 호투에 꽁꽁 묶였다.
2012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프라이스는 올해도 정규리그에서 16승7패 평균자책점 3.58을 기록하며 잘 던졌다. 하지만 유독 가을야구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프라이스의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은 2승9패 1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5.42로 좋지 않았다. 2승 모두 불펜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타선의 도움을 받아 올린 것으로 선발승은 한번도 없었다.
프라이스는 선발로 등판한 포스트시즌 11경기에서 승리없이 9패 평균자책점 6.16을 기록하고 있었다. 올해도 두차례 선발투수로 나서 1패를 당했고 총 6⅓이닝 소화에 그치며 평균자책점 9.95로 부진했다.
프라이스는 2016시즌을 앞두고 보스턴으로 이적할 당시 메이저리그 역대 투수 최대 규모의 계약을 맺었고 올해도 연봉 3200만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포스트시즌만 되면 약해지는 모습 때문에 이날 보스턴에게는 불안요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보스턴은 프라이스의 호투를 발판삼아 휴스턴을 4대1로 누르고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보스턴의 알렉스 코라 감독은 프라이스의 호투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비단 간판 투수의 포스트시즌 징크스 탈출 때문만은 아니었다. 코라 감독은 이날 오전 가을에 부진한 프라이스를 향해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했던 MLB네트워크 방송을 봤고 이 때문에 크게 분노했다.
코라 감독은 경기 후 "그들이 프라이스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 어이가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프라이스는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다. 그들은 반드시 프라이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벼랑 끝에 몰린 휴스턴은 에이스 벌랜더를 앞세워 반격을 노렸다. 벌랜더는 패하면 팀이 탈락하는 벼랑 끝 승부에 강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엘리미네이션 게임'에서 24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2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 기록을 26이닝으로 늘렸고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기록이다.
그러나 보스턴은 3회초 J.D 마르티네스의 솔로홈런으로 벌랜드의 기록 행진을 저지하고 기선을 제압했다. 보스턴은 6회초 라파엘 데베스의 3점홈런으로 승기를 굳혔다. 휴스턴은 7회말 마윈 곤잘레스의 솔로포로 추격에 나섰지만 승부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정규리그에서 108승54패를 기록해 양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한 보스턴은 2013년 이후 5년만에 다시 월드시리즈 무대에 진출했다. 알렉스 코라 감독은 보스턴 지휘봉을 잡은 첫해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를 기회를 잡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사령탑 첫해에 우승을 차지한 지도자는 4명밖에 없다. 가장 최근 기록은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밥 브렌리 감독이었다. 당시 김병현이 애리조나 소속이었다.
보스턴은 디비전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100승62패)를 눌렀고 기세를 몰아 휴스턴(103승59패)을 꺾었다. 이로써 포스트시즌에서 정규리그 100승 이상을 올린 두 팀을 연이어 격파한 역대 6번째 팀이 됐다.
가장 최근에 이 기록을 달성한 팀은 다름 아닌 2004년의 보스턴이었다. 길었던 '밤비노의 저주'가 깨진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