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검의 공 1개' KIA에 꽂혔다, WC를 갈랐다

'악' KIA 김선빈이 16일 넥센과 와일드카드 결정저에서 5회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를 대려다 상대 선발 제이크 브리검의 2구째에 오른 새끼 손가락을 맞는 모습.(고척=KIA)
2년 전과는 다른 KIA였다. 정규리그 5위로 가을야구에 턱걸이한 것은 같았지만 경험이 쌓였고, 전력은 강해졌다. 이번에는 해볼 만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 다시 포스트시즌(PS) 첫 판 탈락이었다. 예상치 못한 부상 변수에 잇딴 실책까지 불운이 겹치며 고배를 마셔야 했다.

KIA는 1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과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6 대 10 역전패를 안았다. 정규리그 5위로 WC 결정전 2승이 필요했던 KIA는 1경기 만에 시즌을 접었다.

이날 KIA는 승산이 있었다. 일단 선발 카드에서 비교 우위가 있었다. 국가대표 에이스 양현종이 옆구리 부상을 털고 등판했다. 올해 13승 11패 평균자책점(ERA) 4.15를 거둔 양현종은 넥센을 상대로는 2경기 2승 ERA 1.29의 특급 성적을 냈다.

넥센 선발 제이크 브리검도 올해 11승 7패 ERA 3.84로 좋았다. 다만 KIA를 상대로는 3경기 1패 ERA 5.40이었다. 올해 KIA는 넥센에 9승7패 우위를 보이기도 했다.

초반은 투수전으로 팽팽했다. 두 선발이 4회까지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다. 숨 막히는 가을야구다웠다.


균열은 5회 발생했다. KIA가 최형우의 적시타로 먼저 2점을 뽑았다. 브리검이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흔들렸고, 희생번트와 삼진 뒤 2사 2, 3루에서 5년 연속 100타점을 올린 최형우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KIA도 뜻밖의 내상을 입었다. 무사 1루에서 번트를 시도하던 김선빈이 브리검의 공에 오른손을 맞은 것. 시속 140km 중반의 속구가 머리 쪽으로 향했고, 깜짝 놀란 김선빈이 피했지만 배트를 쥔 손에 대한 가격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오른 새끼손가락을 감싸쥔 김선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1루를 밟은 뒤 교체됐다.

KIA 김선빈이 16일 넥센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브리검의 공에 맞은 뒤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사진=KIA)
이 장면은 컸다. KIA는 2점을 냈지만 김선빈의 공백은 5회말 수비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대신 유격수를 맡은 선수는 황윤호. 2012년 데뷔해 이번이 첫 가을야구였다. 황윤호는 무사 1, 2루에서 김재현의 다소 깊숙한 땅볼을 잡아 재빨리 송구해 아웃 판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끝에 1루수 김주찬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지면서 판정이 번복됐다.

만약 이게 아웃이 됐다면 경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급작스럽게 투입된 황윤호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을 터. 그러나 베테랑 김주찬의 아쉬운 수비로 무사 만루에 몰렸다. KIA는 이후 이정후의 내야 뜬공을 포수 김민식이 놓치면서 더 어수선해졌다.

이런 장면들이 황윤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2 대 1로 쫓긴 1사 2, 3루에서 황윤호는 서건창의 타구를 흘린 뒤 1루 악송구를 던졌다. 2 대 2 동점이 됐고, 2사 3루가 돼야 할 상황이 1사 1, 3루로 변했다. 결국 선발 양현종이 자책점 1개 없이 강판했다. 설상가상으로 황윤호는 제리 샌즈의 강습 타구를 몸을 날려 잡으려 했으나 글러브를 맞고 튀어 2타점 2루타가 되는 불운을 맞았다.

사실 이런 장면들에 앞서 무사 1루 때 포수 김민식의 타격 방해 실수도 있었다. 김민식은 폭투를 빠뜨리는 등 전반적으로 5회말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김민식은 지난해 SK에서 이적해와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주전 포수다. 큰 경기 경험을 갖춘 김민식이 흔들린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백전노장 김주찬의 베이스 미터치도 마찬가지.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김선빈의 이탈이 가져온 후폭풍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선빈은 KIA 수비진의 핵. 주전이 빠지고 경험이 일천한 유격수가 들어오면서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경기를 하던 KIA 내야진에 심리적 균열과 불안감을 안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게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만든 가운데 실수들이 잇따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KIA로서는 브리검의 공 1개가 날카로운 비수가 돼 꽂힌 셈이다.

그렇다고 브리검의 투구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희생번트 동작을 취하는 타자에게 투수들이 몸쪽 높은 속구를 던지는 것은 일반적이다. 타자를 놀라게 해 제대로 번트를 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다만 공이 너무 깊숙하게 들어간 점은 아쉽다. 브리검도 김선빈이 쓰러진 이후 깜짝 놀라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만약 브리검의 공이 김선빈의 헬멧에 맞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김선빈이 현재 단순 타박상을 입은 것처럼 헬멧을 맞았어도 치명적인 부상이 아닐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다. 속구였기 때문에 브리검은 자동 헤드샷 퇴장을 당했을 터. 그렇게 되면 나비효과는 KIA가 아니라 넥센에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넥센은 KIA를 1경기 만에 누르고 한화가 선착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디펜딩 챔피언 KIA는 아쉽게 가을야구를 짧게 접었다. 브리검의 공 1개에 운명이 결정된 WC 결정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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