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가장 싱싱하고 화려한 순간부터 볼품없이 말라버리는 모습까지 화폭에 담고 있는 한운성 (1946년생) 작가의 이야기이다.
사실화는 민중미술이 한 자리를 차지했고, 추상화는 단색화가 주류로 여겨졌지만 그는 사물을 탐구하는 특유의 끈질긴 시각으로 본인만의 극사실화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가 '꽂힌' 사물은 시대별로 달랐다. 80, 90년대에는 꼬여버린 시대상을 반영하듯 매듭과 새끼줄을 그렸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던 2000년대에는 과일시리즈를 선보였다. 몇해 전에는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건물에 대해 탐구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꽃이다. 왜 일까?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수정이 이뤄지는 순간 시들게 돼 있는 꽃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잖아요. 저도 일흔이 넘으니 손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껴요. 덧없음을 더 느끼는 거죠"
그림을 그릴 때면 '너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그 사물의 본질을 꿰뚫기위해 노력한다는 한 작가는 꽃을 정면의 각도에서 그렸다. 마치 꽃의 '증명사진'을 찍는 것 같다. 각도를 고려하는 정물화와는 전혀 다르다. 가장 화려하고 생생했을 때의 꽃부터 시들어버린 장미꽃, 호박꽃, 떨어진 낙화도 화폭에 담았다.
아무리 덧없어도 꽃은 꽃이다. 한 작가의 꽃 시리즈는 대부분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을 뽐내고 있다. 한 작가는 "꽃은 화사함의 상징이고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1년 반 전부터 꽃에 꽂혀 집중해온 한 작가는 앞으로도 꽃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탐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지러지게 피었다가 쇠락해간다'는 박영택 평론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아요. 꽃에는 삶과 죽음이 함축돼 있죠. 이제 시작이니까 덧없음을 어떻게 본격적으로 그려나갈지, 덧없음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것이 제 인생의 남은 숙제죠"
한운성 작가의 개인전 'FLOS-꽃'은 이달 말까지 서울 삼청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