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살인범 320명 사면'

심사위원 "설마, 자료가 잘못됐을 것" 靑 담당자 "법무부가 결정..내용 모른다"
법무부 "청와대가 준 가이드라인대로 실무 작업"...29일 국감서 결론 나올듯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살인범 320명을 포함해 흉악범이 대거 특별 사면됐지만, 그 배경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민생경제를 위한 철저한 '생계형 사면'으로 흉악범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설명이 전혀 맞지 않게 되면서 도대체 누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향후 규명돼야할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사면심사위에 참여했던 어느누구도 뚜렷한 대답을 내놓기는 커녕, "살인범 사면 숫자가 그렇게 많을수 있느냐"며 오히려 되묻고 있는 실정이다.

한 민간 위원은 "살인범도 특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살인범에 대해서 너무 엄격하는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300명이 넘는 살인범이 한번에 사면됐는데 그건 어떻게 봐야하느냐'고 묻자 "설마 300명이 사면이 됐겠느냐"면서 "숫자가 잘못됐을 것이다. 다시 확인보라"고 대답했다.

법무부가 지난 12일 국정감사에서 공식적으로 숫자가 맞다고 확인한 후에는 "심사 위원에게 미리 자료를 주는 것이 아니어서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서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면서 "그렇다고 우리한테 살인범이 300여명이 있다는 설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다른 민간위원도 접촉을 시도했지만 "특별사면과 관련해서는 인터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만 보내왔다.

법무부를 대표해 참여했던 인사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없다"면서도 "수백명의 살인범이 사면 된 것은 이례적"이라고만 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살인범 등 흉악범 사면에 대해선 이렇다할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심사 위원들도 내용을 제대로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반대로 사전 협의를 통해 조율을 다 마쳐 공식 논의를 건너 뛰었을 공산도 있다.

생계형 사면을 하겠다던 공식 입장과 달리 수백명의 흉악범을 사면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어느 선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가 중요하다.

특별사면 업무를 맡았던 당시 청와대 관계자와 경위조사에 나선 법무부는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일했던 핵심 인사는 "청와대에서는 경제인, 정치인 등 유명 인사에 대해서만 다룬다"면서 "그외의 일반 형사범 등은 법무부에서 알아서 결정해서 보내오면 대부분 그대로 수용한다. 청와대에서 가이드라인을 주는 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사면 내용에 대해선 "살인범 사면은 쉽지 않다"면서 "사면이 아니고 감면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에 취재진이 자료를 바탕으로 '형집행면제 특별사면'이라고 알려주자 "난 모르겠다. 10년전 일이라 기억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무부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특별사면을 대통령 고유권한이라 법무부에서 먼저 제안하거나 할 성질이 아니"라며 "청와대에서 가이드 라인과 기준 등을 정해주면 법무부는 거기에 맞게 실무작업만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의 다른 인사도 비슷한 설명을 내놨다. 이 인사는 "이런 일은 청와대 아니면 결정할 수가 없다"면서 "어떻게 청와대 뜻과 다른 특별사면을 법무부에서 할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의 요청에 따라 오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까지 경위를 파악하고 이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2009년 특별사면 명단에는 살인 320명 뿐만아니라 강도와 특수강도, 강도치사 등 강도범도 123명도 포함됐다.

또 조직폭력(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집단) 관련 범은 45명, 강도강간 등 성범죄자 4명, 뇌물 수수범 7명이 각각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흉악범만 500명에 육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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