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서면에서 한 블록 떨어진 신암은 생경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2~3층 규모의 낮은 건물과 오래된 수령의 가로수. 칠이 벗겨진 간판까지.
신암은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부산의 주력 산업인 신발 제조, 의류 부자재 유통, 생산 공장단지가 밀집돼 지역 경제를 견인한 곳이다.
하지만 점점 섬유, 신발 산업이 쇠퇴하면서 주거 지역으로 재개발됐고 지금은 일부 공장들만 남아 있다.
이런 배경 탓에 신암은 부산의 중심에 위치해있지만 아직 역사의 때가 묻은 흔적이 많다.
먼저 신암로에 늘어선 은행나무는 오래된 동네에 색감을 입혀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 사시사철 신암을 밝히는 40년지기 오토바이 가게와 나무냄새 가득한 로구로(ろくろ 나무를 둥굴게 깎는 기술)장인, 50년된 우리동네 만물상 철물점, 옛날식 미장까지.
동네 곳곳마다 들려오는 재봉틀 소리와 구두굽 못질 소리는 수십 년의 시간을 타고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신암의 역사를 추억한다.
신암의 좁은길에 자리 잡고 있는 세로커피가 '신암 동네'를 주제로 부산 지역 신진 작가들과 손을 잡고 전시에 나선다.
'로구로'는 녹로의 일본어 표현으로 나무를 기계에 고정하여 회전시켜 깎아내는 목공예를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계단봉, 테이블 다리 등이 로구로로 만든 것들이다.
김씨는 50년전 국민학교 시절부터 기술을 배우며 로구로에 나무를 고정해 자기가 가지고 놀만한 팽이부터 깎았다.
로구로의 백미는 곡선 모양을 낼 때 도자기를 빚을 때와 같이 손 감각을 사용하는 데 있다. 이 기술은 익히면 익힐수록 어려운 일이라서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갈수록 값싼 외국산 로구로 완제품을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전문적으로 로구로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 목수들 또한 줄어들고 있다.
김씨는 이러다가 로구로 기술의 명맥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염려한다.
때문에 그는 늘 그렇듯 나무를 끊임없이 깎는다. 좁은 그의 작업실은 나무 냄새로 가득차 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장인의 고민만큼 톱밥 또한 가득 쌓여 있다.
이렇게 사라져갈 수도 있는 일상 예술품을 다시 한 번 조명하는 차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가 깊다.
이번 '유일 로구로' 전시는 권영후 작가와 조나경 작가가 참여했다.
권영후 작가는 인터뷰를 바탕으로 점점 변해가는 과거와 현재의 신암 마을, 그 속에서 생활하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펜 드로잉 작업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부산의 숨은 옛 동네가 가진 역사, 매력을 지역의 청년 작가들과 손을 맞잡아 더 의미가 크다.
서울 성수동이나 익선동, 문래동 예술 창작촌과 같이 옛 것이 남겨진 곳에서의 깊이 있는 예술 활동을 부산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정호 씨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젊은이들이 로구로에 관심을 많이 갖고 로구로가 가진 아름다움을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며 "나무로 빚어내는 작품인 로구로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대대로 이어져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로커피 김홍일, 김수현 대표는 "앞으로도 동네의 오래된 장소나 장인을 발굴하고 젊은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동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신암만의 문화를 창작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호 장인 <유일 로구로>展 10월 27일까지. 부산진구 범천동 '세로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