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그림 두 점과 화가의 사인, 위작 논란 미스터리

국립현대미술관 15년만에 이성자 작품 위작 확인한 이유
진품과 비교하니 사인 다르고 안료 성분 달라
위작에 작가가 친필로 확인한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이 위작이라고 판명한 故 이성자 작가의 <숨겨진 나무의 기억들>은 여러 부분에서 의문점을 남긴다.

이성자 작가는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쓴 대표적 여성화가이다. 1918년생으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삶을 살다가 1951년 남편과 이혼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붓을 들었다. 우주적 신비로움을 담은 추상화를 선보이며 2009년 숨지기 직전까지 작품 활동을 하며 유럽 화단에 한국을 알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이성자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이 2003년에 수천만원을 주고 유수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에서 구입한 소장품 1점이 올해 초 위작으로 판명됐다. 왜 15년이 지나서야 위작임이 밝혀졌던 걸까?

위작 논란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작 의혹은 유족들이 먼저 제기했다. 유족들은 당시 정현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만나 이 작품은 진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작가의 세 아들들은 신용석 전 인천아시안게임유치위원장, 신용극 통상회장, 신용학 파리7대학교수 등 각자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인물들이다.

하지만 미술관측은 서울옥션에서 받은 '진품확인서'를 토대로 작품이 진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이 진품확인서는 프랑스에 있는 이성자 화백에게 2002년 직접 받은 친필로,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근거가 됐다. 유족들은 확인서의 필체는 인정하면서도 작품은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미술관은 확인서를 믿고 진품으로 여기고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한바탕 논란을 거치고 난 뒤 유족들은 2014년 진품이라고 여겨지는 그림을 국내 한 화랑을 통해 직접 구매했다. 이후 해외에서 작품을 보관하다가 2018년에 국내로 들여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문가들을 불러 두 작품을 직접 비교·검증했다. 결론은 유족의 말대로 미술관 소장품이 가짜라는 것이었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이성자 작가는 보통 이니셜에서 'SEUND JA RHEE'를 적지만 소장품은 D가 빠져있었다. 또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캔버스 뒷면에 친필 서명이 없이 깨끗했다. 결정적으로 안료를 분석한 결과 소장품은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성분이 달랐다.

미술관은 올해 전시에서 유족의 작품을 대신 내걸었고, 소장품은 불용처리했다. 경매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도 검토하고 있다.

남는 의문점은 왜 위작에 작가가 친필로 작품확인서를 썼느냐는 것이다. 미술관과 유족들도 작품은 가짜지만 작품확인서에 작가의 친필은 맞다고 인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애초에 경매회사에 작품을 위탁한 사람이 답을 해야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위탁자가 작품을 입수했는지, 작품확인서는 어떻게 받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작품 판매를 대리한 경매회사는 비밀보호의무를 이유로 위탁자를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

서울옥션은 "미술관의 입장은 존중하지만, 친필의 작품확인서가 있기 때문에 위작이라고 단정짓기는 섣부르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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