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부산 해운대에 있는 메가박스 장산점에서 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메이드'(The Chambermaid)의 오프닝 시퀀스다.
이 영화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멕시코시티 한 고급 호텔에서 메이드로 일하는 에벨리아(가브리엘라 카르톨)의 일상을 뒤쫓는다. 이를 통해 호텔로 상징되는, 견고한 계급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의 단면을 여지없이 들춰낸다.
주인공 에벨리아는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는 원주민 여성이다. 이웃에게 아이를 맡겨둔 채 나오는 호텔 일은 그녀에게는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아침 6시까지 출근하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하루 업무 탓에 전화로만 아들의 안부를 묻는 일이 다반사다. 집에 씻을 공간이 없어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퇴근하는데, 막차가 끊기는 날이면 여지없이 호텔 작업실 한켠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에벨리아가 지닌 '여성' '원주민' '메이드' 등의 정체성은 그녀가 계급, 성(gender), 인종으로 대표되는 차별의 최전선에 있음을 대변한다. 머리에 착용하는 검은 망을 뒤집어쓰는 순간 그녀는 부조리한 시대상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메이드가 된다. 극중 관련 에피소드를 몇 가지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탄 남성 요리사가 엘리베이터 담당 여직원에게 자신이 가려는 층수를 말한다. 밀고 들어온 수레 위 음식을 거리낌없이 집어먹는 요리사 앞에서, 여직원은 책잡히지 않으려는 듯 머리에 핀을 꽃으며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에벨리아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 층수를 말한 뒤 식사 대용으로 들고 온 팝콘을 먹자, 해당 여직원은 즉시 단호한 목소리로 "이곳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2. 바쁘게 일하는 에벨리아에게 관리자로부터 "000호에 용품을 더 갖다주라"는 무전이 온다. "조금 전에 갖다 줬다"는 그녀의 말에 관리자는 "VIP잖아요"라며 종용한다. 용품을 챙겨간 방에는 백인 중년 남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정치 현안을 논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테이블 위 수북이 쌓인 용품 더미에다 가져간 것을 더하고 있는 에벨리아에게 해당 남성이 준엄하게 말한다. "휴지도 하나 더 놓고 가라"고….
◇ 하나를 얻고 모든 것을 잃는 절대다수 기층민의 아이러니한 삶
숫기 없는 에벨리아는 호텔 동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한다. 더욱이 그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다가오는 동료들조차 결국에는 "이 물건을 하나 사달라"는 식으로 이해관계가 걸린 본래 목적을 드러낸다. 불안정한 생계 앞에서 이타심마저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하층민들의 삶은 처절하다.
그러던 중 동료 메이드 미니토이(테레사 산체스)의 호의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에벨리아는 웃음을 찾아간다. 일탈을 통해 꽁꽁 묶어뒀던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잠시나마 피해의식을 벗어나 삶의 활력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극 말미 그녀는, 극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그렇게 얻고 싶었던 물건 하나를 손에 쥔 순간 자신이 꿈꿨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상황에 직면한다. 현진건(1900~1943)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연상시키는 이 아이러니는, 어쩌면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절대다수 기층민에게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계기로 에벨리아는 호텔이라는 철저한 계급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웅크린 자신을 분명하게 인지하기 시작한다. 극 말미 호텔 옥상에 오른 에벨리아가 고요한 천상과 소음 가득한 지상의 중간계에서 깨달음을 얻는 듯한 장면은, 그녀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스크린 밖 모순 가득한 우리네 현실을 상기시킨다.
영화 '메이드' 엔딩신에 그려진 이 멕시코 원주민 여성의 특별한 저항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극단의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의 우리가 각자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돕는 용기와 연대의 실마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