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의 성과를 기준삼아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우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여권의 압박 기조에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그러나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여론의 기대감은 주요 입장을 정하는 데 난점으로 작용하고 있어 고심이 깊어 보인다. 바른미래당은 대북 정책 협조와 견제 의견이 갈리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 이해찬 '집권론'에 열 받은 한국당…'평양 국회회담' 참석은 '검토'
한국당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처리와 남북군사합의 관련 협조는 현재로선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아직 북한 비핵화 관련 명확한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대북 유화책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논리다.
한국당 원내 핵심 당직자는 8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비핵화와 남북 교류의 속도가 비대칭적이다. 핵 리스트 신고, 리스트 검증, 핵 폐기 작업, 폐기에 대한 검증 작업이라는 비핵화 단계 가운데 단 한 발짝도 못 나가지 않았느냐"며 "그런데도 평양선언에서의 남북군사합의는 실질적 무장해제 내용을 담고 있고,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의 경우, 경협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재정에 대한 정부의 설명도 없다. 실시 초기단계의 예산만 넣어놓고 국회를 호도하는 건 동의를 못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당 내부에선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최근 평양에서 열린 '10·4 선언 11돌 기념행사'에 참석, 북측인사들과 만나 꺼낸 집권론에 "야당과의 협의 환경에 찬물을 끼얹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판을 깨버린 발언"이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온다. 한 의원은 "정권을 내놓지 않겠다. 정권을 내놓으면 당신들(북측)과 일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 자체가 대한민국 전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정권을 뺏기면 또 못하기 때문에 제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했었다.
이날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도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이 대표가 평양 방문 당시 우리 취재진과 만나 '국가보안법 개정' 가능성을 시사한 점도 언급하면서 "오히려 평양에 갔으면 북한 노동당에 '핵무장을 주장하는 노동당이 없어져야 한국 국민이 평화다운 평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따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왜 하필 국가보안법 폐지를 상사에게 보고하듯 보고하고, 정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는지 유감"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은 날선 비판 속에서도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환영의사는 덧붙였다. 비대위 내부에선 남북 국회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더라도 참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비대위 고위 관계자는 "평양에서 국회회담이 열리더라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핵화가 정확히 이뤄지면 교류나 경협이나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북측에 전달하는 걸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대를 회복하는 등 남북 평화 기류에 대한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상황에서 자칫 '무조건 반대' 세력으로 비춰져선 안 된다는 고민도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함께 '대북 신중론'을 펼쳤던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기류가 최근 '여권 협조'로 선회하려는 듯한 조짐도 한국당에겐 부담이라는 분석이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내놓은 공개발언이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입장으로 해석됐고, 김관영 원내대표 역시 최근 "판문점선언 뿐 아니라,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 합의서 등을 포괄적으로 동의하고 비준하는 방법에 대해 국회가 의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남북국회회담도 참석하기로 지도부 차원의 의견을 모으자 당내 신중론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8일 의원워크숍을 열어 이달 초 내부 이견으로 정하지 못했던 비준 동의 관련 당론을 모으려 했지만, 또다시 갈등만 확인한 채 불발됐다. 다만 김관영 원내대표는 워크숍 이후 기자들과 만나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는 필요없다고 보는 게 당의 다수 해석"이라며 "저는 기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에 대해 직접 비준을 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내부 이견으로 비준 주체를 국회 대신 대통령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결국 '협조'에 무게를 실은 발언으로 읽힌다. 그는 "(바른미래당은) 판문점 선언에 대해 지지를 한다"며 "지지결의안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워크숍에서 지상욱 의원은 "평화를 바라는 정당으로서, 수구 냉전의 논리가 아니라 북한을 엄격한 관계로 냉정하게 다시 바라보자는 것"이라며 "따져보지 않고, 북미 회담 전에 앞서가는 모양이 돼선 안 된다"고 신중론을 폈다.
특히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가 이 자리에 관련 보고를 이유로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부르자 지상욱·이학재·김중로 의원은 공개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긴장 기류가 흘렀다.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에 앞서 조 장관을 불러 설명을 듣겠다는 건 사실상 지도부가 협조 입장을 정해놓고 신중론자들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정부 입장을 다 아는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 얘기를 이 자리에서 듣는다는 건 이미 바른미래당은 국회 비준을 마음 속으로 결정해 놓고, 형식적 절차를 밟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반대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 의원과 이 의원은 조 장관이 도착하기 전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처럼 협조 입장으로 향하는 지도부와 당내 보수 성향 의원들 간의 이견은 앞으로도 당의 균열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