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는 MB의 '쌈짓돈'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했다. 누군가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도 했다. 거짓말같이 10년만에 다스(DAS)의 실소유자가 '형님'에서 'MB(이명박 전 대통령)'로 바뀌었다.

2008년 당시 BBK 특별검사팀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다스 ·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 등을 수사한 결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2018년 10월 5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실소유한 정황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회가 날 때마다 다스를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회사라고 강조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가는 길엔 다스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성공한 샐러리맨의 신화'를 등에 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92년,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꽃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에게는 늘 '돈 문제'가 꼬리표처럼 붙었다. 문제의 돈이 나온 곳은 다름아닌 바로 '다스'였다.


이 전 대통령이 종로 국회의원 시절이던 1996년, 당시 비서관이었던 김유찬 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의원이 법정 선거비용의 10배를 썼다"고 폭로했다.

여론조사 비용 등 선거자금이 대부기공(2003년 다스로 변경) 자금에서 나왔고,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에 비밀사무실을 마련해놓고 선거자금관리를 했다는 것.

이로인해 이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당선무효형이 확정됐지만, 2002년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2년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다스는 여전히 이 전 대통령의 곁에 있었다.

나중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된 대부기공 신학수 팀장이 월급을 대부기공으로부터 받으면서 서울시장 선거운동을 도왔던 것이다. 신 팀장은 이 전 대통령이 쓴 책('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을 배포하는 등 사전선거법을 위반한 정황이 들통났지만, 추후 무죄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다스는 전국민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다스 설립의 밑천이 된 서울 도곡동 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서류만을 놓고 보면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2010년 사망)씨와 큰형 이상은씨가 돈을 합쳐 도곡동 땅 1000여평을 이 전 대통령이 대표로 재직하던 당시 현대건설 등한테 샀다가 1995년 포스코에 263억원을 받고 팔았다.

하지만 도곡동 땅이 원래 현대의 것이었고, 또한 다스가 현대자동차의 부품 회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전 대통령과 연관짓지 않고서는 설립 자체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여기에 다스가 2000년 190억원을 이 전 대통령이 재미교포 김경준씨와 동업했던 BBK에 투자한 사실도 다스와 이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2012년에 불거진 내곡동 사저 의혹 사건 때도 다스는 등장한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거주할 목적으로 내곡동의 땅을 산 것이라 밝혔는데, 알고보니 이 땅을 아들 이시형 씨와 청와대가 나눠 산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 재산이 없던 이시형 씨는 당시 6억원이라는 거액을 이상은(큰 아버지)씨에게 빌렸다고 해명했지만, 의구심만 키웠다.

2013년에는 이시형 씨가 다스 이상은 회장의 아들인 이동형 부사장을 누르고 경영권 장악을 시도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2010년에 다스에 입사한 이시형 씨는 4년만에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고 경영권까지 노렸지만, 이로인해 다스 실소유자 논란이 다시 이는 등 주변의 곱지않은 시선속에 자진 사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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