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되겠어요?"… 학교 운동부, 도 넘은 '상납 문화'

상급학교·프로구단 진출 등 감독 권한 '절대적'
음성적 금품수수 잇따라… 학부모 철저한 '을'
경기교육청, 전국 최초 '1운동부 1감사관제' 추진

(사진=자료사진)
"감독의 권한은 절대적이죠. 그러나 이번에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된 감독에 대해선 가차 없이 해고 통보했습니다."

대구시교육청 안광훈 감사관은 대구 소재 A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박모(49)씨가 최근 학부모들로부터 2천여만원을 요구해 건네받은 정황을 감사한 결과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운동부를 육성중인 학교는 7일 현재 4453교, 선수는 6만3029명에 달한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구기 종목을 비롯해 태권도, 유도, 씨름 등 운동부 종목만 40여개에 이르며, 학교별 운동부(팀)는 7897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학교 운동부의 감독·코치들은 대부분 교육공무직 신분으로, 학교장이 임명권을 갖지만 대회 출전권과 주전선수 선발권, 상급 학교 또는 프로 구단으로의 진출과 관련한 권한은 감독·코치에게 집중되다 보니 금품 수수와 같은 전횡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학교 체육계의 '상납문화'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뿌리 뽑히지 않아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경기지역의 한 중학교 야구부 연습장.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신병근 기자)
◇ 철저히 '을'인 학부모들… 운동부 운영 청렴도 '최하'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A고교 박 감독은 지난해 한 3학년 선수의 학부모에게 대학 진학의 명목으로 1천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또 다른 선수 학부모 10여명으로부터 각종 대회출전 찬조금 800만원,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고사를 지내는 '고사비' 250만원 등 대구교육청 감사에서 드러난 금액만 2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감독 앞에서 철저히 '을'의 위치에 있는 학부모들은 감독의 주문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대구교육청은 올해 1월 A고교 야구부 졸업생 학부모들의 제보를 시작으로 녹취록과 학부모 진술 등을 통해 박 감독의 금품 수수 정황이 드러났다고 판단, A고교에 박 감독을 해고할 것을 통보했다.

이와 함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박 감독과 학부모 12명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박씨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야구부는 감독이 타순을 정하는 것은 물론 상급 학교와 프로로 진출 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며 "감독의 실력을 떠나 불법을 저지른 것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또 엄단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인천의 B중학교 야구부에서도 감독의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돼 인천시교육청이 감사를 벌였다.

감사는 B중학교 야구부 조모(48) 감독이 지난 1월 제주도 동계 전지훈련 당시, 한 선수의 학부모에게 돈을 요구했고 부모는 곧바로 현금 100만원을 인출해 감독에게 건넸다는 내용에 대해 이뤄졌다.

인천교육청은 한 달 간 야구부 학부모 20여명을 조사해 조 감독의 금품 수수 정황에 대한 학부모들 진술이 동일하다는 점을 근거로 지난달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조 감독은 본인에 대한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내사 단계라 보면 되는데, 교육청의 관련 자료를 분석해서 또 다른 학부모들이 (조 감독에게) 금품을 제공했는지 등을 확인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학교 운동부 비리가 끊이지 않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하는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설문조사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운동부 운영과 관련한 청렴도는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감독·코치들을 위한 금품과 향응 제공이 음성적으로, 또 개인 대 개인으로 이뤄지다보니 교육당국조차 운동부 비리 사례와 건수 등을 집계하지 못하는 상태다.

경기도교육청 전경. (사진=경기교육청 제공)
◇ 경기교육청, 전국 최초 '1운동부 1감사관제' 추진

이런 가운데 학교 운동부 비리 척결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교육청이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교 운동부, 학생 선수들이 소재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1운동부 1감사담당관제'를 도입할 예정으로, 17개 지역 교육청 중 처음 추진되고 있다.

운동부 운영 분야가 외부청렴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에 운동부 비리와 관련해 학부모 설문 결과가 반영된 경기교육청의 청렴도는 3년 연속 14위에 머물고 있다.

경기교육청은 초·중학교 보다 상대적으로 부패에 취약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축구부(22교), 야구부(13교) 등 운동부를 운영중인 35교에 감사담당관을 파견할 계획이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경기교육청과 산하 교육지원청 소속 감사담당 공무원들은 각각 지정된 운동부 운영학교 1교씩을 맡아 부패 방지와 예방활동을 수행한다.

감사담당관들은 선수 상담과 학부모 연수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수익자부담금 학교회계 편입과 집행에 대한 컨설팅, 불법찬조금 예방 지도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경기교육청 이재삼 감사관은 "다소 무거운 이미지의 감사를 벌이는 것 보다 예방 차원의 지원 업무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며 "청렴하게 운영되는 우수 학교에 대해서는 표창과 함께 해외연수 우선 추천 등의 인센티브제를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운동부 운영에 대한 역량과 청렴 의지를 가진 학교장이 임명될 수 있도록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교장추천제' 등 교장 임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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