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단체들의 보이콧이 풀리면서 올해 부산영화제는 무엇보다 '정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준비 기간이 짧았음에도 아시아를 비롯, 유럽까지 아우르는 초청작들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영화인들에게는 쉽게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의 매력적인 향연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323편 중 눈여겨 볼 영화들을 엄선해봤다.
부산영화제는 굵직한 스타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들을 개막작,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 등에 초청해 전면에 선보인다.
개막작은 배우 이나영이 주연을 맡은 '뷰티풀 데이즈'. 이나영은 이번 영화로 '하울링'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윤재호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인 이 영화는 비극적인 탈북 여성의 삶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대중 곁을 떠나있었던 이나영이 기존 이미지와 달리 거칠고, 척박한 삶을 겪어 낸 여성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아름답지만 비극적 역사를 가진 군산의 풍경은 영화에 맛을 더한다. 박해일, 문소리, 정진영, 박소담, 문숙, 명계남, 윤제문, 정은채, 한예리, 이미숙 등 굵직한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도 관전포인트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내 영화인을 주목하는 한국영화 회고전이 열린다. 이번 부산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은 바로 1970~1980년대를 주름잡은 이장호 감독이다.
그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은 물론이고,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등 대표작 8편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이장호 감독은 가장 엄혹했던 시기, 영화 속에 실험적 리얼리즘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영화는 도시화에 따른 빈곤과 정치적 억압에 시달렸던 당시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발한다.
추억의 영화에 목마른 관객들은 이장호 감독과 '황금 콤비'로 불렸던 배우 이보희의 전성기까지 볼 수 있어 일석이조다.
전세계 영화제들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영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고향인 멕시코에서 17년 만에 제작한 신작이다.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로마'에서 1970년대 멕시코 중산층 가정과 가정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넷플릭스가 제작을 맡아 칸국제영화제에는 끝내 출품되지 못했지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그랑프리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흑백화면이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우아한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에 간 한 여자가 자신의 딸이 유괴되면서 은밀한 비밀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감독의 연출이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좋은 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