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은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 가운데 서훈을 받지 못한 이들의 재심사를 요청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제주 모슬포·성산경찰서장을 지낸 故문형순 경감은 지난 1919년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의용군에 편입돼 시베리아 노령으로 이동했고, 1921년 고려혁명군에 재편돼 군사교관으로 복무했다.
1929년에는 국민부 중앙호위대장, 조선혁명당 초기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5년에는 북지 하북성을 중심으로 지하공작대로 복무했다. 아울러 광복 직전인 1945년 8월에는 임시정부 주 화북광복군에서 복무했다.
광복 후 제주 4·3사건 때는 모슬포 좌익혐의 주민 100여명을 자수시킨 후 풀어줘 학살 위험에서 구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계엄군이 성산포서 예비검속자에 대한 총살명령을 내리자 "부당하다"고 거부하고 295명을 풀어줬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8월에는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입증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안 총경은 1919년 3·1운동과 10·1만세운동에 참여해 각각 5개월과 3주씩 구금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는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했던 여성 독립운동단체 결백단 임원을 맡았으며 1937년 만삭의 몸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안 총경과 동기생으로 경찰에 입직해 1947년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을 맡은 故양한나 경감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양 경감은 3·1운동 직후 밀항해 상하이 독립운동에 합류했고 이때부터 부산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해 전달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1923년에는 임시정부 의정원 회의에 경상도 대의원으로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근 문 경감과 안 총경의 인사기록, 양 경감이 기록된 의정원 참석자 명단, 최능진 전 국장에 관한 감시카드 등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국가보훈처에 이들에 대한 독립유공 재심사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