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심재철 사태와 헐리우드 액션

심 의원, 靑 겨냥 연일 폭로하지만, 아직 공분살 만한 내용은 없어
여권도, 법적 대응.윤리위 제소 등 총반격...과잉 대 과잉 대결 지적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지난 21일 오전 검찰의 '예산 정보 무단 열람·유출'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의원 사무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추석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청와대 업무 추진비 폭로'를 놓고 여의도가 시끄럽다.

청와대를 겨냥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연이은 폭로에 기획재정부의 고발과 심 의원의 즉각적인 맞고소, 한발 더 나가 더불어민주당의 심 의원에 대한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 한국당의 김동연 기재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검토 등 여야가 작심하고 싸움판을 벌이는 모습이다.

자칫 정기 국회를 코앞에 두고 정치권이 어지러운 진흙탕 싸움에 휘말릴 상황이다.

야당과 여권의 이유 있는 싸움이지만, '결과적으로 뭐가 남을까'하는 회의감이 벌써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심재철 의원의 연이은 폭로는 야당 입장에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로 볼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다. 심 의원과 한국당도 이를 이유로 검찰이 심 의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자 "야당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도 이때문이다.

한국당은 28일 급기야 대검찰청과 대법원에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는 한국재정원에서 다운받은 자료 중 일부다. 청와대가 부적절하게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청와대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심 의원이 앞으로 뭘 내놓느냐에 따라 그가 불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확보한 자료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수도, '찻잔속 태풍'에 그칠수도 있다.


섣부를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심 의원의 폭로는 내용에 비해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많아 보인다. 당장 여야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지도 우려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 폭로에도 분명한 선(線)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폭로 자체가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쉽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심 의원이 사실 확인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실명까지 공개하면서 당사자들과도 또다른 법적 싸움으로 번질 조짐이다.

이명박 정부시절 야당인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박지원 의원은 사적인 자리에서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야당은 10번 성공해도 한번이라도 똥볼을 차면 안된다." 전면에서 당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폭로는 되레 역풍이 불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여당은 이런 점을 파고들며 심 의원을 역공하고 있다. 민주당 기재위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하고 "비인가 행정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고 가짜뉴스를 배포하고 있다"며 심 의원의 기재위 사퇴를 요구했다.

심 의원의 4차례 의혹 제기가 국민적 공분을 사기보다는 내용이 빈약한 '헐리우드 액션'식 폭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자료 내용보다는 압수수색에 대한 반발심이 더 강하다.

여권도 심 의원에 대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사태를 키우고 있긴 마찬가지다. '이 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정면 대결하고 있다.

사실상 기밀로 보기 어려운 청와대 업무추진비 공개에 연이은 법적 대응은 '과잉'이라는 지적이다.

기재부는 27일 심 의원의 추가 폭로에 보좌관에 이어 심 의원에 대해서도 추가 고발했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권한 없는 자에 의해 자료가 무단 열람·유출됐고, 유출된 자료가 잘못 활용되거나 제3자에게 누출될 경우 국가안위와 국정운영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권이 우려하는 것은 업무추진비 내역 외에 청와대 납품 내역 등 더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에게도 위해를 가할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은 심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추가 고발이 이를 예방할수 있는 능사도 아니다. 추가 고발로 심 의원을 압박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고도 남은 자료를 반환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업무추진비는 공익차원에서 공개해도 위법성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청와대 납품 내역도 국가적으로 큰 위해가 된다고 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재부의 고발 조치가 야당의 공격을 봉쇄하기 위한 정략적 대응으로 읽힐 여지가 다분하다.

만약 문제가 될 내용을 공개한다면 그 자체는 심 의원이 전적으로 책임질 일이다.

심 의원의 폭로 내용이 별것 아닌 걸로 판명되면 여론이 심판해 줄 것이다. 정치인에게 무서운 것 법적 판단보다 국민의 판단이다.

양측이 치열하게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여론전을 펴고 있지만, 국민 여론은 '답 없는' 국회로 낙인찍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의도의 먼지가 하루빨리 가라앉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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