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 '적폐청산, 정권교체' 등 촛불 광장에서 시민들 손에 들려있던 손팻말들이 거대한 그림으로 옮겨졌다. 일일이 노란 점을 찍어 광화문 광장에 타올랐던 수백만개 촛불을 표현했다.
바로 민중화가로 불리며 80년대부터 약자의 편에서 사회 부조리를 화폭에 담아왔던 이종구(64,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작가의 신작들이다.
이종구 작가가 최근 2년간 작업한 신작들은 한국 역사의 격동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광장-16,894,280개의 촛불)은 촛불집회로 점차 변해간 세상의 모습을 45개의 캠버스를 연결해 표현한 대작이다. 작가는 <광장-가족>(2017)을 비롯해 그림 곳곳에 자신과 가족들의 얼굴까지 그려넣었다. 그 광장의 한 복판에 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암 투병으로 몸이 좋지 않았는데도 23번의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 작가는 "화가이자, 시민의 입장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포스터를 그대로 옮겨오고, 시위 구호들이 그림에 등장하는 등 메시지가 너무 선명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의도한 것이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문구를 빼야 그림도 좋고 더 세련되다는 것을 알죠. 하지만 고민 끝에 증거를 붙이듯 문구를 넣기로 했어요. 그때의 순간을 역사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상상의 영역으로 배경을 그렸는데, 실제 현실이 돼 놀랐고 감동이 컸다"고 말하는 이 작가는 이번 평양정상회담의 그림도 구상 중이다.
9년 만에 열린 개인전에서 그의 작품 메시지는 더 직설적이고 과감해졌다. 이에 대한 미학적 비평과 비판, 비난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작가가 알고 있었다. 민중화가들에 대한 싸늘한 비판 속에서도 80년대부터 꾸준히 농촌 현실 등을 그리며 부조리와 정면으로 맞섰던 이 작가는 "사람과 작품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일관된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 민중화가들은 이제 어떤 비판적인 시각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당당하게 답했다.
"항상 사람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각은 계속 유지됩니다. 이 정권도 만약에 권력을 사유화하거나 한다면 사정없죠"
이종구 작가의 개인전 <광장_봄이 오다>는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 본관에서 10월 21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