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는 어느새 병풍처럼 두 배우를 바라보고만 있다. 뮤지컬 '마틸다'의 주역 황예영(2007년생)·안소명(2008년생)이다.
황예영.안소명을 포함해 4명의 아역 배우가 무려 1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틸다' 역을 꿰찼다.
지난 21일 오후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두 배우는 당당 그 자체였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도 전혀 부담스러워 앉는다. 몇몇 질문에는 너무 많이 들은 질문이라며 식상하다는 표정을 지어 기자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실컷 이야기하다가도 '이건 빼주세요'라는 요구까지 직접 한다. 그렇게 두 배우와 인터뷰 아닌 수다로 웃고 떠들다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음은 1문 1답.
= 황 : 은근슬쩍 부러워해요. 저는 이게 첫 뮤지컬이라 '황예영이 뮤지컬 한다고?'하며 관심을 가져요.
= 안 : 부러움보다는 응원을 해줘요. 아, 학교에서 먼저 나가니까 애들이 나도 데리고 가라고는 해요.
▶ 친구들이 공연 보러 왔나요.
= 황 : 아직 안 왔어요. 친한 친구들은 겨울방학 때 온다고 했어요.
= 안 : 어른들이 많이 와서 봤어요. 친구들은 아직.
▶ 첫 공연 때 어땠어요. 떨리지는 않았나요. (인터뷰 당시 안소명은 3회, 황예영은 2회 공연했다.)
= 안 : 설레는 느낌이랄까. 관객들에게 '마틸다' 처음 보여주는데 실수하면 어떡하나 생각도 들었고, 연습할 때는 긴장이 안 돼서 안 틀리는데, 무대 위에서는 긴장돼서 틀릴 것도 같았고요.
= 황 : 저는 한 달 전부터 긴장했어요. 설레는 마음도 많긴 했는데, 관객들 만난다는 게 긴장이 많이 됐어요.
= 황 : 저는 일찍 와요. 긴장이 되니까 커피숍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며 동선 등을 생각해요. 마틸다는 동선이 여러 개라 복잡해요. 객석으로 나갈 때도 있으니까. 그런 걸 다 생각하고, 그때 그때 감정도 생각해요. 마틸다는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다 있어요.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없죠.
= 안 : 저는 목이 빨리 잠겨서 제일 많이 하는 게 발성 연습이에요.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꿀물을 마셔요. 아카시아 꿀이 큰 통에 있었는데 7달 만에 다 먹었어요. 또 대사가 많으니 공연 전에 헷갈리는 거 없나 다시 생각하기도 하고요. 동작 노트도 생각하죠. 제가 제일 많이 받는 노트가 인상을 찌푸리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자주 인상을 찌푸리거든요. 마틸다는 많이 안 웃는 아이고, 자기감정을 잘 표현하는 애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표정을 더 찌푸리지 말라는 것 같아요.
▶ 연습하며 힘들어서 엄마에게 투정부리지는 않았나요.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 황 : 투정은 안 부렸고요. 가족에게 신경을 잘 못써서 미안했어요. 제가 멀리 살거든요. 그러니 연습실까지 왔다 갔다 하면 24시간 중 절반은 서울에 있어요. 언니랑 오빠는 학교에 있고, 엄마랑 아빠도 일하시니까, 다들 많이 못 봤어요.
= 안 : 춤이 제일 어려웠어요. 가시나무가 찌르는 것 같았어요. 무대가 경사도 있고, 지그재그 네모로 돼 있고, 파여 있어서 넘어지거나 할 때 심장이 덜컥했고, 가시나무 찔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 안 : (이)지나요.
= 황 : 지나는 새침하게 생겼는데 재밌어요.
= 안 : 저는 지나랑 8살 때부터 같이 뮤지컬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처음에는 도도하게 생긴 거예요. 그런데 장난꾸러기고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지나가 분위기 메이커예요.
▶ 예영 양은 '마틸다'가 첫 뮤지컬이죠.
= 황 : 학교에서 합창반 같은 걸 했는데, 선생님이 저에게 뮤지컬을 알려주셨어요. 노래와 춤은 좋아하는데 배우나 가수같은 연예계에 꿈이 없었어요. 뮤지컬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해보니까 재미있어요.
▶ 원래 꿈은 뭐였어요.
= 황 : 경찰관이요. 제가 2학년 때부터 꿈꿨어요. 저는 여러 꿈이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난 애정으로 하나의 꿈만 몇 년을 꿨어요. 그런데 요즘은 헷갈려요. 이 뮤지컬이 끝나면 아쉬운 마음 때문에 뮤지컬을 계속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진짜 헷갈려요. 고민돼요.
= 안 : 노래하고 춤을 좋아하니까, 7살 때 엄마가 오디션 경험을 시켜보자면서 데리고 갔는데 덜컥 붙은 거예요. 그게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어요. 이후 '명성황후', '레미제라블'을 했어요.
= 황 : 소명이는 성우도 많이 했어요.
= 안 : 애기 역할들 많이 했어요. 제일 유명한 게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어릴 적 코코, 그리고 '콩순이'에서 콩순이. '보스베이비', '쿵푸팬더', '마이펫의 이중생활' 등도 했죠.
▶ '마틸다' 오디션에는 어떻게 도전하게 됐나요.
= 안 : 오디션이 있다는 걸 알았고, 오디션 보기 전에 책을 먼저 봤어요.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감정 잘 이해하려고 읽었죠.
= 황 : 저는 마틸다 뮤지컬 있다는 걸 알기 1년 전쯤 책을 봤어요. 그때 너무 재밌게 봤고, 뮤지컬로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마틸다는 어떤 아이라고 생각하나요.
= 황 : 책에서 본 마틸다는 진짜 작아요. 뼈밖에 없어요. 그렇게 마르고 작은 아이의 몸에서 큰 힘이 나온다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그 아이였다면 그 능력이 무서웠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마틸다는 그걸 잘 활용해요. 멋있었어요.
= 안 : 당당하다, 강하다는 단어가 많이 떠올랐어요. 왜냐면 책에서는 진짜 작고 말랐어요. 어떻게 저런 힘을 발휘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도 못 읽는 책을 1주일 만에 몇 권을 다 읽고,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마틸다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머릿속에서 별 5개가 윙윙 도는 것 같이 생각이 많아졌어요.
= 안 : 비슷한 건 당당한 마틸다처럼 누군가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눈빛도 닮았어요. 비슷하지 않은 건 저는 사자머리를 하지 않아요. 그런 점 빼고는 마틸다 그 자체인 것 같아요.
= 황 : 마틸다와 닮은 점은 모르는 사람이든, 친한 사람이든 옳지 않은 일 했을 때 참고 넘어가지 않고 똑바로 하도록 고쳐줘요. 다른 점은 저는 마틸다처럼 원피스도 안 입고, 생활 방식도 다르고, 우리 학교엔 나쁜 교장 선생님도 없고, 마틸다의 엄마 아빠처럼 딸의 재능을 몰라주는 엄마 아빠가 아니죠.
▶ 근데 제작발표회 때 나온 얘기잖아요. 정말 트런치불과는 안 친해요. (지난 5월 제작발표회 당시 미스 트런치불 역의 배우 김우형은 "맡은 배역 탓에 아이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안 : 진짜 안 친해요. 더 안 친하려고 노력해요. 왜냐면 만약 친하면 연기할 때 연기가 안 살 것 같아서요. 끌려갈 때도 헤헤헤 웃으며 끌려갈 것 같고요. 친해지더라도 공연 끝나고 친해지려고요.
= 황 : 아닌데, 저는 친해요. 친한 게 좋아요. 트런치불과 마틸다가 서로 함께 하는 씬이 많은데, 안 친하면 쿵짝이 안 맞잖아요. 저는 오히려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 황 : 없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해요. 감정이 더 중요하죠.
▶ 어떤 감정이 제일 어렵나요.
= 황 : 제일 힘든 부분이 도서관 1, 2, 3과 허니 하우스 장면이에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야 해요. 그러려면 말을 잘 살려야 하죠. '갸르릉' 하면서 고양이처럼도 해야 하고, 말로 행복하다는 듯한 감정도 전해줘야 해요. '허니 하우스'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는 장면이라 클라이맥스이고 대박 반전이 있어요. 잘 살려야 하죠. 보고 있으면 '우와, 진짜 진짜 헐' 이러거든요.
= 안 : 저는 도서관 장면 4개가 다 중요하다고 봐요. 4개를 다 잘 들어야 해요. 그걸 이해해야 허니 하우스 장면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 졸면 안 돼요. 표도 비싼데 졸면 어떡해요.
황 : 그 포즈가 커튼콜 때 나오거든요. 이렇게 허리에 손을 두고 당당하게 서 있으면 사람드리 마틸다에게 무릎을 꿇어요.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면 그게 기분 짜릿해서 웃음이 나요. 잊을 수 없는 기분이죠. 그러면 혀를 깨물어요. 제가 웃음을 잘 못 참거든요. 연습 때는 다 웃었어요. 그래서 연출 선생님이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안 : 마틸다 포즈가 공연이 끝났다는 표시잖아요 통쾌하기도 하고, '내가 마틸다야' 이런 느낌도 들고. 뭔가 동화책에서 튀어나오는 기분도 들어요. 저는 마틸다 포즈하면 오렌지 같아요. 오렌지 먹을 때처럼 상큼하달까.
▶ 스스로를 과일로 표현한다면.
안 : 저는 자몽이요. 자몽이 맛있잖아요.
황 : (설)가은이가 항상 자기를 과일 아니면 색이나 음식으로 표현해요.
안 : 예영 언니는 바나나?
황 : 나 바나나 싫은데.
안 : 그럼 사과.
황 : 나 사과도 싫어하는데. 나는 좋아하는 게 음 키위.
안 : 그래 맞는 것 같아.
황 : 그냥 느낌이 그래요. 키위. (웃음)
안 : 차지연 배우님 좋아해요. '서편제'와 '위키드' 등 하신 뮤지컬이 다 멋진 거예요. 그때부터 롤모델로 삼았아요. 만나본 적도 있어요. 롯데월드에 갔을 때 거기서 콘서트를 하셨어요. 인사도 드리고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 뮤지컬 '마틸다'를 차지연 배우님이 꼭 보러 오시면 좋겠어요.
▶ 예영 양은 누가 보러 오면 좋겠나요.
황 :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보러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도 오면 좋겠고. 아니 우리나라 국민 모든 사람이 보러 오면 좋겠어요. 이건 그만큼 멋진 공연이니까요.
공연은 내년 2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