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적기 조우하자 "쐐액~"…전투기 2대 격렬한 기동

[TA-50 탑승 전투기 훈련 체험] G슈트 착용해도 심장 조여오는 중력가속도 '공포'
중력 압박으로 피로 아래로 쏠리면 기절,조종사·기자 함께 다리에 힘주며 "윽!윽!"
10년 베테랑 조종사 "보람과 자부심 커…자녀에 권해 보세요"

TA-50 고등훈련기(국방일보 제공)I
9월 초 청주에서 전투기 탑승 훈련을 마치고 바로 찾게 된 경북 예천의 공군 16전투비행단. 오전 내내 조종사들과 함께 장비를 점검하고 비행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점심식사도 함께 했다.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고 드이어 탑승시간. 이글루라고 불리는 격납고에 이르자 최고시속 마하 1.5를 자랑하는 고등훈련기(경공격기) TA-50이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며 후방석에 탑승할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년차 베테랑 조종사는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전투기의 이상유무를 확인했다.

몸 사방으로 안전벨트를 채우고 헬멧을 쓴 뒤 산소마스크를 쓰자 숨이 턱 막혀왔다. 비행기 시동이 걸려야 산소가 공급된단다. 숨을 쉬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풀었다 조였다하는 사이에 윙~하는 엔진음이 들려왔다.

막상 시동이 걸렸다고 생각되자 오전의 설레임과 달리 몸이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제 숨쉬기 편하시죠? 출발합니다.갠찮을 겁니다"

혹 뒷자리 기자를 못미더워할까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조종사는 다 안다는 듯 친절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정비사의 깃발을 신호로 전투기는 천천히 격납고를 빠져나왔다. 활주로 옆에서 대기하던 6대의 TA-50이 한대씩 차례대로 이동해 이륙하기 시작했다.

▽이륙하자마자 수직 급상승… "헉! 이게 뭐지?"

활주로에 들어선 전투기는 순식간에 사뿐히 날아올랐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드디어 날았구나. 전투기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구경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였다.

억!하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몸이 뒤로 확 뉘여지더니 거대한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몸이 마구잡이로 쑤셔진 채로 억지로 하늘로 빨려올라가는 느낌?

잠시 뒤에야 전투기가 가속을 하면서 수직에 가깝게 솟구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날 청주에서 비행탑승 훈련을 한대로 최대한 다리에 힘을 주면서 버텼다.

한참 솟구치던 전투기가 수평비행을 하는가 싶더니 다시 한쪽으로 반쯤 뒤집어 급선회했다.

힘차게 비상하는 TA-50 (공군 16전투비행단 제공)
훈련 공역인 강원도 정선, 태백 상공을 향해 기수를 꺽은 것이다. 순간 윽!윽!하는 조종사의 호흡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미리 착용한 G슈트도 부풀어 올랐다. G슈트는 비행기가 급상승,급선회 할때 생기는 중력의 압박으로 머리 등 심장 위쪽의 피가 아래로 쏠리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주는 슈트다.

연결된 호스로 순간적으로 공기가 유입돼 다리를 압박함으로서 하체로 피가 몰리는 것을 막아준다.

G슈트의 G는 Gravitational acceleration(중력가속도)의 약어다. 쉽게 말하면 엄청 빠른 속도로 직진하던 비행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전투기가 급선회 또는 급상승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강하게 억제할 때
중력의 힘이 커지며 인체의 몇배에 달하는 압력이 위에서 아래로 누르게 된다.

이 현상으로 피가 아래로 쏠리면서 뇌에 산소공급이 부족해져 순간적으로 시각을 잃게되고 기절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들은 G슈트를 입는 것은 물론 '윽!'하는 소리를 내면서 성문(聲門)을 닫아 뇌 속 피가 부족해지는 상황을 방지하는 기술을 숙달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G슈트의 도움없이 일정시간 이 중력가속도를 버티는 훈련을 통과해야 계속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

G(중력가속도)는 민간여객기와 달리 좌우상하로 빠르게 기동해야 하는 전투기의 물리학적 특성이자 본질이며 전투기를 몰고 싶은 조종사에게는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본 숙제인 셈인 것이다. G압력이 심할 때는 팔뚝 등 몸 곳곳에서 실핏줄이 터지기도 한다고 한다.

▽"10시 방향 한번 보세요!"…전투기들, 격렬한 도그 파이트(Dog Fight) 기동

조종사는 훈련 공역에 이르기 전 "G 훈련 한번 더 하겠습니다"하더니 비행기를 이리저리 꺾어 돌렸다.

TA-50 (국방일보 제공)
정신을 차리고 계기판을 보니 G 수치가 떠있다. 6G 중간 정도. 기자가 비행탑승 훈련을 받을 때 6G까지만 버티면 통과라고 해서 슬쩍 손잡이를 놓았던 때의 숫자와 비슷했다.

G테스트에 적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조종사는 "상당히 잘하시는데요. 체질 같기도 하시고..." 라며 웃었다.

조종사가 3만5천피트(대략 10km)까지 올라가 보자며 고도를 높였다. 2만7천피트까지 올라갔지만 온통 두꺼운 구름뿐이어서 다시 고도를 낮춰 훈련 공역으로 향했다.

시속 7백km로 날아 10여분만에 도착한 훈련 공역. 조종사가 10시 방향을 한번 보라고 했다. 마치 작은 새같은 검은 물체가 10시에서 12시 방향으로 날아 사라졌다.

전투기가 급선회했다. 아군과 가상적기가 조우했을 때 서로를 요격시키기 위한 전투기동이 시작된 것이다.


전투기는 급선회와 급상승, 하강을 반복했다. G슈트가 부풀었다 꺼지고 다시 부풀고 몸이 이리저리 쏠리는 정신없는 상황. 가상적기가 어디쯤에 있는지 찾아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비행전 브리핑을 떠올려 보면 두 대의 전투기는 옆으로 누운 8자를 그리며 꼬리물기, 이른바 도그 파이트(Dog Fight)를 하는 중이었다.

뒤에서 꼬리를 물어야 상대방의 이빨(미사일)을 피하면서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에는 수십, 수백km 밖에서 우수한 레이다로 누가 먼저 적을 발견해 레이다로 요격시키냐가 승패를 결정짓는 흐름이지만 조종사의 기본인 근접 전투기동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한다.

임무를 바꿔가며 도그 파이트를 끝낸 전투기는 공대지 공격 훈련에 돌입했다. 시내 한 건물이 목표. 멀리서 강하하며 목표물이 정확히 조준된 모습의 사진을 찍는 방식의 공격훈련이었다.

TA-50 (국방일보 제공 )
공대지 훈련까지 끝나고 부대로 귀환할 시간. 짝을 이뤄 쫓고 쫓기는 요격훈련을 했던 전투기가 멀리서 다가와 손에 잡힐 듯 발 아래에서 날았다.

"전투기가 위아래로 교차비행하면서 어디 이상이 없는지를 서로 살펴주는 거죠. 실전에서라면 피탄 자욱같은 상처가 있을 수도 있고요"

목숨 걸고 전투훈련을 할 조종사들의 마무리 우정비행으로 느껴졌다.

이후 TA-50은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며 또 반쯤 뒤집었다가 활주로에 진입하는 전술입항으로 기자를 깜짝 놀래킨 뒤 안전하게 착륙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시간 동안의 동반탑승. 전투기 조종사들의 영공수호 의지와 보람 또 그들의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TA-50 동반탑승 전과 후

기자는 TA-50 동반탑승 전날 청주에 있는 공군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비행적응 훈련을 받았다.

TA-50 전투기 탑승 체험을 위해 이동 중인 공군 16전투비행단 조종사들과 취재진 (왼쪽에서 5번째와 6번째가 권혁주 기자와 한기웅 대위)
2만5천피트 상공을 가정한 공간에서의 산소부족과 기압차 적응 체험, 비상시 탈출훈련, 비행착각 체험 그리고 일정 기준치(6G)를 견뎌야 탑승을 허락해 주는 중력가속도 테스트 등이었다.

전투기 탑승 당일 오전에는 조종사들과 시간을 보냈다. 조종사들은 장비를 챙겨주는 팀이 따로 있음에도 본인이 태울 기자들의 장비를 챙겨주고 이상유무를 체크하고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터를 설명해 줬다.

훈련 내용과 목표 등 비행계획에 대해서도 나란히 앉아 함께 설명을 듣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전투기 비행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점심 식사도 짝끼리 마주보고 앉아서 했다. 전방석 조종사와 후방석 탑승자간 신뢰와 이해를 높이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면 임관한 뒤 2년간의 고된 교육,훈련을 받아야 한다. 조종사들은 긴급상황에 대비해 부대 밖에 관사를 두고 생활할 수 없다. 계급에 따른 급여 외에 월 1백만원 안팎의 수당을 더 받는다고 한다.

기자를 태운 조종사는 한기웅 대위였다. 평일에는 하루에 두번씩 전투기에 오르고 주말에는 아내를 만나러 경기도 분당으로 간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최종 전투기 조종사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전투기 조종사들 대부분 상당한 보람과 긍지을 갖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기자님도 나이 적당한 자제분이 계시면 도전하라고 권해 보세요"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F-16이 주기종이었다는 그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텔스기 F-35A를 타보고 싶다는 꿈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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