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을 전달하는데 소극적인 이들 학계의 태도가 대중의 역사의식 확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 '군함도'는 단적으로 "일본인보다 조선인을 더 나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이는 당대 일제를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내부 세력의 분열을 조장했던, 민족 분열정책에 대한 논의 자체를 막았다는 우려를 낳았다.
이러한 분열정책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오롯이 재현됨으로써 여전히 효과를 발휘해 왔다는 데서, 이 영화가 품은 동시대성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극 영화 속 복식 등 소품의 디테일에 대한 고증 부족이 곧바로 역사왜곡 논란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다.
일례로 19일 개봉하는, 고구려사를 다룬 첫 영화 '안시성'은 극중 고구려군이 입은 갑옷 형태, 주요 캐릭터들이 투구를 쓰지 않고 전투에 임한다는 점 등이 일각에서 논란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사실 고구려 역사는 그 기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고증 자체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당대 초강대국 당나라 대군과 치른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안시성주 양만춘조차 가상의 인물이라는 데 힘이 쏠리고 있다.
역사가 심용환은 13일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에 등장했는데, 그 전황에서 양만춘이나 연개소문의 활약이 어땠는지는 기록마다 모두 달라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며 "중국 사서는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고, 우리 측 사서는 너무 나중에 나온 책이다. 나름 기록이 있으나 내용도 자세하지 않고 고증도 힘든데, 이를 오롯이 복원한다는 것은 힘든 이야기"라고 진단했다.
◇ "안시성 전투, 달갑게만 보기 힘든 이유 있다"
영화 '안시성'과 같은 시대극이 완벽한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심용환의 지론이다. 오히려 이러한 영화를 통해 당대를 더 큰 틀에서 봄으로써, 지금 현실에 발붙인 가치를 길어 올리려는 움직임으로 연결시키자는 것이다.
그는 "안시성 전투를 달갑게만 보기 힘든 이유가 있다. 고구려 말기에는 귀족간 다툼이 격렬해지는데, 그 와중에 권력을 찬탈한 인물이 연개소문"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연개소문은 당나라에 대한 강경책으로 일관했고, 권력을 찬탈한 다음에도 강경 모드를 견지했다. 이는 당나라 입장에서 보면 싸우자는 이야기 밖에 안 됐고, 당의 침략에 명분을 주는 행위였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처럼 말이다."
심용환은 "연개소문은 대당 강경책으로 국력을 소모한 측면이 크고, 연개소문 사후 그 아들들 사이 갈등이 심해지는데, 아들 연남생은 당나라로 망명하면서 10만 호를 데려갔다"며 "이는 결국 국내성 일대 귀족이 대거 넘어가면서 영토를 굉장히 많이 빼앗겼다는 이야기"라고 부연했다.
특히 "안시성 싸움 하나만 놓고 보면 위대한 승리일지 모르겠으나, 고구려가 대국을 상대로 국력을 계속 소진함으로써 결국 버텨내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우리에게는 고구려를 대할 때 그러한(위대한 승리) 정서가 있는데, 그 시대를 너무 단선적으로 이해하도록 강권해 온 탓"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역사학계·교육계가 여전히 민족주의적인 담론과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탓에 다양한 연구성과가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데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심용환은 "사극 영화 등 관련 예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역사적 사실과 맞냐 안 맞냐는 논쟁은 상투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다가온다"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면 모르겠으나, 역사 왜곡 논란은 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지금의 영화 등 문화예술 분야는 고증이나 기억의 복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하는 창작의 영역"이라며 "논란이 되는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미화시키는 식으로 사회적인 파급효과를 내는 작품은 문제가 있지만, 그 모든 시도를 역사왜곡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네 역사의식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