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과 괴수물을 결합한 영화 '물괴'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 점에서 인상적이다. 권력자들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모습이, 권력 관계로 빚어지는 우리 사회 내 부당한 사건들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떠오르게 만드는 까닭이다.
중종 22년, 거대한 물괴가 나타나 백성들을 공격한다. 물괴와 마주친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참혹한 죽임을 당하거나, 살더라도 역병에 걸려 고통 속에 죽어간다. 그렇게 한양은 삽시간에 끝 모를 공포에 휩싸인다.
왕(박희순)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영의정(이경영)의 계략이라 여긴다. 이에 따라 왕은 옛 내금위장 윤겸(김명민)을 궁으로 불러들여 수색대를 조직한다. 윤겸은 오랜 세월 함께한 동료 성한(김인권), 외동딸 명(이혜리), 그리고 왕이 보낸 허 선전관(최우식)과 함께 물괴를 쫓는 과정에서 추악한 비밀과 마주한다.
극중 권력 다툼의 대척점에 서 있는 중종과 영의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중종은 "백성의 왕이 되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영의정은 백성을 말 그대로 '개돼지'로 여기는 속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중반까지 이어지는, '물괴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두고 각자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믿고자 하는 데서 이 둘은 한몸을 공유한 두 머리다.
이 영화는 당대 권력을 쥔 자들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살육의 현장을 묘사하는 데 특별히 공을 들인다. 이 과정에서 다소 자극적인 신체 훼손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참상 역시 인간성의 발로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자연의 섭리는 결코 인간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극 중반 이후 물괴의 등장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이러한 권력 투쟁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오롯이 증언한다.
그간 '쥬라기공원' '고질라' 등 유명 괴수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줄곧 강조해 왔다. 영화 '물괴' 역시 이러한 고전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려 애쓴 만듦새를 엿볼 수 있다. 극중 물괴는 당대 권력자들의 이해관계와 동떨어져 있다. 자연이 인간성을 지니고 있지 않듯이, 물괴를 정략에 활용하려는 자들의 끝이 좋을 리 없다.
봉준호 감독 작품 '괴물'(2006)과 마찬가지로, 영화 '물괴'는 미지의 생명체 그 자체보다는 이와 조우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이 점에서 영화 '물괴'는 조선 시대로 배경을 옮긴 '괴물'로도 표현할 수 있다.
극중 물괴를 표현한 CG는 결점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완성도가 높다. 이는 김명민, 김인권을 위시한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효과적인 장치다.
'물괴'는 기시감이 강한 영화다. 앞서 언급한 '괴물'은 물론 주인공 콤비에게서는 '조선 명탐정' 시리즈, 극의 분위기에서는 '관상'(2013),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등을 떠올리는 관객들도 있을 법하다.
이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 장치'와 '진부한 설정에 따른 피로감'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다가갈 법하다. 정치·사회를 향한 회의적인 시선보다는, 위에 언급한 영화들이 전했던 메시지를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전자 입장으로 '물괴'에 접근하기를 권한다.
12일 개봉, 105분 상영,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