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3차 회담의 성과를 위해서 여야 정치권의 총의가 결집된 비준 동의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권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성과’ 등 전제조건을 달고 있어 여야 협상은 난항이 불가피하다.
여소야대의 국면인데다가, 국회 비준이 사실상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한국당 등 보수진영을 견인하기 위해선 ‘종전 선언’의 가시화 등 변화의 계기가 필요해 보인다. 정기국회 회기 내 비준의 성패가 정상회담의 성과와 연동돼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 與 “판문점 선언 소요재정 부담해야.. 평화에 따르는 대가”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원내대변인은 9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간담회 내용을 반박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에 협력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면서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 없이 국민에게 엄청난 재정 부담만 지운다는 것인데, 두 가지 모두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4.27 판문점선언에서, 깜짝 만남이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났다”며 “9·9절 열병식에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 없이, 국가재정이 무조건 집행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야권의 태도에 대해 ‘미국보다 혹독한 잣대’라고 비판했다. 그는 “체제 전부를 걸고 국제무대로 나오려는 북한에 미국보다도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며 선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한국당은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평화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며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해 소요되는 재정을 우리 정부가 부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남북 간 교류가 활성화되면 그로 인해 얻는 경제적 이득은 막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원내대변인의 주장은 이미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된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비준 동의를 먼저 한 뒤 비핵화 성과에 따라 재정을 투입해 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청와대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주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7일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과 비용추계서를 함께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정부는) 가급적 빨리 처리해서 국민적 동의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자 하는 뜻이 처음부터 있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힌 바 있다.
◇ 野 “비핵화 실질적 성과 불가피.. 미국의 종전선언 선행돼야”
한국당 김병준 위원장은 ‘북한 비핵화’ 성과를 ‘제자리걸음’이라고 혹평하면서 “북한은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를 예로 들며, 비핵화 선행 조치를 했다고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은 핵 리스트에 대한 신고 → 검증 → 폐기라는 절차에 진입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비슷한 인식을 드러냈다. 김 원내대표는 “미국은 핵 시설에 관한 주요 리스트를 제출받고, 그것을 검증한 다음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비준 동의 시점을 ‘미국의 종전 선언 이후’로 내다봤다.
다만 김 원내대표는 “판문점선언 비준 문제도 가능하면 비준을 해서 남북관계가 좀 더 구속력 있고 힘을 받는 그런 상황으로 됐으면 좋겠다”고 해, ‘선(先) 국회비준’의 명분으로 대화국면과 비핵화의 촉진을 노리고 있는 여권의 인식과 일부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의 경우 보수 색채가 짙은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분당(分黨)할 사안”이라며 비준 동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11일 의총 결과가 주목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정부가 추진 중인 여야 정치권의 동반 방북 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한편 한국당은 오는 18일 정상회담 전 비준 동의를 요구하면서 11일에야 재정 추계를 공개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반발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엔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 항목 중 철도·도로 연결 등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내용이 담겨있다.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는 국회 동의권이 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어 비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제처의 입장이다.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