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23세 이하 겸임)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에 축구 열풍을 몰고 왔다. 1월 아시안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베트남 사상 첫 준우승을 이끈 데 이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역시 최초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썼다.
베트남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빗대어 '쌀딩크'라는 애칭을 선물했다. 박항서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 이야기가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
박항서 감독은 6일 휴가 차원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내가 베트남에서 작은 성적을 거둬 히딩크 감독님과 비교하는데, 내가 비교되는 게 부담스럽다"면서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메달은 못 땄지만, 처음 4강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베트남 축구에 발자취를 남긴 것 같다"고 웃었다.
사상 첫 아시안게임 4강. 성적도 성적이지만,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히딩크 감독과 닮았다.
박항서 감독은 "기분 좋은 상황에서 나온 세리머니"라면서 "내가 연출하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성격 자체가 그런 것을 못한다. 어느 순간 느낌이 오는 대로 한 세리머니"라고 말했다.
변방에 머물던 베트남 축구를 아시아에서 상위권에 올려놓는데 걸린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혼자 힘은 아니다. 함께 베트남으로 가는 모험을 선택한 이영진 수석코치와 배명호 트레이닝 코치의 도움도 컸다.
박항서 감독은 "10월25일이면 1년이 된다. 1월 대회부터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한국인 이영진 코치와 배명호 코치가 있었다"면서 "베트남 스태프들도 최선을 다해줬고, 선수들도 훈련할 때 적극적으로 잘 따라줬다. 합심했기에 성적이 잘 나왔다"고 공을 돌렸다.
사실 베트남은 아시안게임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11월부터 열리는 동남아시아 대회 스즈키컵에 초점을 맞추고 팀을 만들어왔다. 베트남에서 기대한 아시안게임 성적표는 예선 통과였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 전에 문체부 장관과 미팅이 있었는데 '아시안게임은 예산만 통과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부분이 예선 통과 정도로 생각했다. 베트남 언론도 아시안게임에 기대를 많이 하지 않는 느낌"이라면서 "가면 갈 수록 부담이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즐기면서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