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제주 예멘 난민 거부감 속 포용…"공존 가능성 봤다" (계속) |
◇ 축구 통해 서로 알아가…"한국인과 어울릴 수 있어 감사"
지난달 31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새마을금고 연수원 운동장에서는 예멘청년들과 도민들이 서로 팀을 나눠 축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문화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랐지만, 축구를 하는 이 시간만큼은 함께 땀을 흘리고 골을 넣으면 서로 기뻐하는 등 하나가 된 모습이었다.
축구선수 박지성과 손흥민을 좋아한다는 아흐메드(23)도 "제주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축구를 통해 한국 사람들과 얘기하고, 가까워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현재 임시숙소에서 묵고 있는 60여명의 20대 예멘청년들은 지난 7월부터 매주 2차례씩 도민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도내 7개 축구팀과 축구 경기를 가졌다.
처음엔 축구공도 없었고 복장도 변변치 않았지만, 함께 뜻을 모은 도민들의 후원으로 지금은 번듯한 유니폼과 축구화도 생겼다.
성요한 신부는 "도민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축구 교류를 시작할 수 없었다"며 "이들이 한국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는데 축구를 통해 도민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낯선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저는 예멘사람입니다" 자원봉사자 40여명이 한글 교육
"안녕하세요. 저는 예멘사람 할리드입니다."
취재진이 지난달 30일 서귀포시 중문동의 임시숙소에서 할리드(30)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아랍어가 아닌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직 서툴지만 또렷한 발음이었다.
예멘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할리드는 사우디 연합군과 이란군의 대리전으로 변질한 내전 상황에서 강제징집을 거부하다 허리에 총을 맞았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후 지난 5월 아내 하야드(25‧여)와 함께 제주로 왔다.
지금도 총상 때문에 몸이 불편하지만,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해 부인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숙소 한편에는 한국어 공부 책과 함께 한글 공부 흔적이 가득한 연습장이 놓여 있었다.
할리드는 "한국음식이나 사람들 모두 좋다"며 "총상과 함께 당뇨로 몸이 많이 아프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 하야드도 "원하는 일을 빨리 얻을 수 있도록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백가윤 난민인권을위한범도민위원회 교육팀장은 "선생님 대부분 전문 교사가 아니지만, 예멘인들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짬을 내서 봉사해주고 있다"며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예멘인들의 적응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 아파트에서 나가라"…집단행동에 차별적 시선도
논란 초기에는 마을주민들이 예멘인들을 수용한 도민 가정에 개별적으로 찾아가 항의하는데 그쳤다면 최근 들어서는 주민들이 집단행동으로 예멘인들을 숙소에서 내쫓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말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제주시내 한 아파트를 임대해 예멘인 12명을 살게 했지만, 아파트 주민회의 반발로 지난달 말 다른 곳으로 숙소를 옮겨야만 했다.
또 지난달 한 난민 관련 시민단체에서 후원금을 통해 제주시 애월읍 펜션들을 임대해 예멘인 100여명을 수용하려고 하자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등교거부 등 반발해 계획이 철회됐다.
일상에서 차별의 시선도 있다. 서귀포시 중문동 임시숙소에서 묵고 있는 무함마드(25)는 "버스를 타면 한국 사람들이 옆에 앉지도 않는 등 배척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같은 곳에 사는 하디프(21)도 "낮에 돌아다니면 째려보거나 무서워하는 게 느껴져서 낮에는 되도록 밖에 안 나간다"고 토로했다.
현재 예멘 난민 신청자들 대부분이 이들처럼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며 되도록 임시숙소에만 머물고 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강력사건으로 입건된 적은 없다.
◇ 혐오 속 꾸준한 연대…"난민 공존 해법 제주서 찾을 수 있을 것"
예멘 난민 신청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그 속에서도 묵묵히 예멘인들을 도와주는 도민들 덕분에 현재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예멘인들은 큰 혼란 없이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성인 난민인권을위한범도민위원회 위원장은 현 제주 예멘 난민 상황에 대해 "여전히 한쪽에서는 예멘인들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를 극복해나가는 도민들의 끊임없는 노력들 때문에 균형이 잡혀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난민들과 국민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모델들이 제주도에서는 미약하지만 형성되고 있다"며 "향후 한국 사회의 난민 정착과 관련한 공존 모델을 만들 때 제주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대의 방식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