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와 판소리가 만났다. 그간의 전통적인 판소리가 전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서구의 이야기를 채택했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 오셀로'는 요즘 젊은 국악인들이 시도 중인 '국악의 대중화' 또는 '현대화'와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그저 <오셀로> 이야기를 판소리라는 형태로 전하는 거라면, 이야기 소재의 신선함은 있을지언정, 색다름은 반감된다. 이미 예전부터 판소리를 색다른 이야기와 결합하는 방식이 있어 왔다. 그것들의 방점은 '판소리'에 찍혀 있었다.
최근 인터뷰에서 소리꾼 박인혜는 "'판소리 오셀로'는 '판소리'보다 '오셀로'에 방점이 찍혀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판소리는 그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달 수단으로서 택한 것일 뿐, 핵심은 이야기, 다시 말해 메시지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생, 즉 설비(設妃), 직업 이야기꾼이다. 설비는 낮은 신분의 여성이나, 그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과 입장이 있다.
연출 임영욱은 "판소리는 '태도 혹은 입장의 예술'이다"면서, "판소리 연기는 사실주의적 연기가 아니다. 화자의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그 인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관객이 무대에서 보는 인물은 '단'뿐이다"고 말한다.
즉 관객은 단의 태도 혹은 입장을 보는 것이다.
<처용가>에서 처용은 아내의 잠자리에 다른 사내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미련을 버리고 떠난다. 이러한 그의 사고방식은 동양적 혹은 불교적이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처용과 다르다. 아내의 외도를 확인도 없이 의심했고, 상상했으며, 결국 분노에 눈이 멀어 주변 인물을 죽이고 자신마저 죽는 파국에 다다른다.
처용에 대한 이야기를 앞에 병치함으로써, 관객은 자연스레 두 인물의 같은 상황과 다른 결말을 한 데 놓고 자연스레 그 이유를 고민한다.
이에 대해 소리꾼 박인혜는 "인간의 마음에 짐승이 하나 있는데, 이 짐승을 잘 보살펴야 한다. 안 그러면 잡아먹히는 순간이 있고, '오셀로'가 살인에 이른 것 역시 이 때문이다"면서 "임영욱 연출이 원작에 없는 것을 쓴 것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판소리 오셀로'가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인 셈이다.
한편, 이야기꾼인 '단'이 동양 여성이라는 점에서 '판소리 오셀로'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오셀로'를 재해석했다는 홍보 문구에 대해서는 임영욱과 박인혜 모두 경계했다.
두 사람은 "설비는 전근대를 살고 있는 자연인으로서 미덕을 가진 인물이지, 여성주의적 시각이 반영된 인물은 아니다"며 "서구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지지하지만, 이번 작품은 원전의 다른 맛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원작의 관음적 시선에 대해서도 사실상 관조를 취하고 있다. 온전히 여성주의 시선에서 본다면 더 날카롭고 깊이 들어갔을 거다"고 부연했다.
공연은 9월 22일까지 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