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에서 올라온 권혁진 군은 입학 초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집도 먼 탓에 다른 친구들처럼 주말마다 가족을 볼 수도 없었다.
자연스레 외출이 잦아진 권 군에게 보안관들은 정문을 지날 때마다 '혁진아. 어디 가니, 언제 들어오니,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 등 따뜻한 말 한마디씩을 꼭 건넸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권 군에게는 말 하나하나가 큰 의지가 됐다. 학교생활도 점점 적응해 가며 2학년이 됐다.
그런데 지난달 12일 권 군은 보안관으로부터 "그동안 고맙고 즐거웠다"며 "31일을 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학교 측이 6년째 경비 업무를 맡아오던 보안관 2명에게 "고용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던 것이다. 학교보안관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경기도교육청의 공문 때문이었다.
권 군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고 한다. 장래희망에 항상 노동운동가 또는 시민사회활동가를 꿈꾼다고 말을 하면서도 피부에 맞닿고 지냈던 분들이 이렇게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지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권 군은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과 논의 끝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보통사람들'(보안관님 해직사태 해결을 위한 학생 행동)이라는 연대단체를 결성했다.
박정연(20.여) 씨 등 졸업생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때 보안관들이 많게는 하루에 100개씩 오는 전교생의 택배를 좁은 보안관실에서 맡아주고 라면도 직접 끓여줬었다. 또 재수생에게는 학원까지 찾아와서 편지를 건네며 응원해 줬고, 졸업생들이 안부 문자를 보내면 답장도 꼭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연대단체에는 재학생을 비롯해 졸업생 200여 명이 모였다. 서명은 전교생 600명 중 541명이 동참했다. 학부모 800여 명도 함께 했다.
이들은 학부모회장을 비롯해 교장, 교육청, 국회의원실까지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
논란이 일자 경기도교육청이 추가로 공문을 보내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공문에는 '보안관을 지금과 같은 근무형태로 근속시키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할 권한이 없고, 용역파견 근로자 형태로 보안관을 재계약하는 것은 학교장의 재량에 해당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보안관 2명 만의 해직을 막은 게 아니었다. 이번 공문으로 보안관들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용역업체 소속 기숙사 사감과 운전원, 관리보조원, 통학 차량보조원 등 약 500명이 재고용될 기회가 열린 것이다.
보안관 신모(63) 씨는 "제가 많이 울지 않는 사람인데 기자회견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눈물샘이 마르도록 많이 울었다"며 "자식 같은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경비 보안관을 아낄 줄 몰랐다"고 했다.
신 씨는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최근에는 애들한테 배우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며 "애들이 어른보다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