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에 사는 전세버스 기사 A(50)씨는 지난 2월 설레는 마음으로 강원도로 향했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은 수송 버스가 부족해 대회 곳곳에서 잡음이 일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맹추위 속에 셔틀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2~3시간 발이 묶이기 일쑤였다.
A씨는 이 소식을 듣고도 기꺼이 평창으로 향했다. 춥고 고되더라도 그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현지 상황은 매스컴에서 보고 듣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했다.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숙소에서 쪽잠을 청해야 했고, 매일 나오는 김치와 국에 반찬만 조금 다른 식단으로 속을 채워 넣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매일 왕복 200㎞ 내외의 눈 덮인 노선을 수차례씩 오가며 추위에 떨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지만 A씨는 대회 폐막까지 강원도를 지켰다. 자고 일어나면 동료 기사 몇몇이 짐을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빈자리가 생길수록 A씨의 어깨는 점차 무거워졌다. 그러나 패럴림픽 폐막 다섯 달이 넘은 지금까지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 실망은 다시 한번 좌절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셔틀버스 기사들은, 인체에 비유하면 모세혈관과도 같은 존재였다. 180개국 7000여 명의 선수단, 자원봉사자 1만 4천여 명을 비롯해 5만 명이 넘는 대회 운영인력과 관람객 등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대회는 개회식 전부터 자원봉사자·셔틀버스기사 등 운영인력 처우 문제, 노로 바이러스 창궐 등 갖가지 문제로 삐걱댔다. 대회는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나 그 이면에는 A씨처럼 숨은 일꾼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 정도 규모로는 셔틀버스 운행이 불가능했다. 현대차는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와 계약해 버스를 조달하기로 했다. 금호고속은 자사 버스와 기사로 일부 노선을 운용하는 한편 나머지 노선을 전국 각지의 1차 벤더(하청)에게 넘겼다. 1차 벤더 밑으로 중소규모의 여행사나 전세버스업체들이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모여들었다.
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A씨가 몸담은 전세버스업체 'ㄱ 관광'은 금호고속-1차 벤더-재하청에 이은 '재재하청'이었다.
금호고속은 지난 3월 1차 벤더들에게 비용을 지불했다. 1차 벤더 중 하나인 'ㄴ 투어'도 곧바로 재하청 'ㄷ 여행사'에게 돈을 내려 보냈다. 그런데 'ㄷ 여행사'가 어떤 이유에선지 돈의 흐름을 끊었다.
결국 재재하청인 'ㄱ 관광'도, 'ㄱ 관광' 직원인 A씨도 겨우내 고생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ㄷ 여행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업계 종사자들은 하도급이 만연한 운송업계에서 이런 식의 '펑크'는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까지 임금을 받지 못한 평창올림픽·패럴림픽 셔틀버스 기사는 A씨만이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파악된 피해 업체만 2곳으로 피해 추산액도 수천만원 대다. 전세버스업계는 피해액이 전국적으로 수억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전세버스공제조합은 전국의 지부에 공문을 내려보내 피해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취합이 끝나는 대로 관계당국에 적절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말했다.
조직위 측은 "민원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지만 조직위가 가진 여유 예산이 없는 데다 피해 업체나 기사들과 조직위가 용역-발주 관계도 아니라 지금으로선 기사들을 도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