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오른 동생 손을 잡아줄 때만 해도 덤덤한 표정을 지었던 남측 오빠 최시욱(84) 할아버지는 버스가 출발하자 오열하기 시작했다.
동생 손을 놓지 않으려 출발한 버스를 따라 뛰어가던 최 할아버지를 남측 관계자들이 막아서자, 할아버지는 "시연아!"라며 동생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쏟아냈다.
26일 오후 1시, 마지막 작별 상봉이 끝났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상봉장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돼 버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남측 아들을 보게 된 북측 조덕용(88) 할아버지는 버스에 탄 채 대성통곡을 했다.
유복자로 자랐던 아들 조정기(67)씨는 아버지 손을 잡고 "오래 사셔야 돼. 그래야 한 번 더 만나지. 그러니까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소리쳤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씨는 달려가며 계속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남측 이산가족 중 가장 멀리, 마지막까지 쫓아갔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담배를 태우며 또다시 눈물을 흘리던 조씨는 "68년 만에 처음 뵙고 마지막이 됐다"며 먼 산을 바라봤다.
북측 오빠를 만난 남측 정영기(84) 할머니는 거의 버스에 매달리다 시피하며 "아이고, 아이고" 통곡했다.
버스는 이윽고 출발하고, 오빠의 손을 놓쳐버린 정 할머니는 가족들을 부둥켜 안고 "아이고. 이를 어째. 아이고, 오빠를 어떡해"하며 오열했다.
이를 지켜보던 재일 친북매체 '조선신보'기자도 이를 지켜보며 같이 눈물을 터트렸다. 그는 "어머니, 제가 잘할게요. 제가 열심히 해서 꼭 같이 사는 날이 오도록 노력할게요"라고 위로했다.
◇"北과 협조 통해 성공적 진행"…심각한 고령화는 과제
8.15를 계기로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26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우리측 가족이 신청한 북측 가족을 만났던 1차 상봉과 북측 가족이 찾던 우리측 가족을 만난 2회차 상봉 모두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가족들은 2박 3일간 각각 여섯 차례, 12시간을 상봉하며 60여년 만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특히, 가족만의 시간을 더 오래 보낼 수 있도록 둘째날 처음으로 객실 중식을 진행한 점은 큰 호응을 받았다. 북측도 출입심사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하고 보장성원들의 태도도 부드러워지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은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판문점선언 이후 첫 번째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측의 성의있는 협조로 성공적으로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 됐다. 부모자녀 상봉은 1차 7가족, 2차 1가족뿐이었고, 건강 문제로 일부 상봉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가족들도 발생했다.
때문에 이산가족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박 회장은 "이산가족이 1년에 3천 명에서 4천 명이 세상을 떠난다. 앞으로 7년 내지 10년이면 상봉이 이런 형태로는 어렵다. 가장 긴급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10월 말에 추가 이산가족 상봉"…상봉 정례화 기대
남북은 우선 올해가 가기 전에 추가적인 상봉행사를 진행하는 데 뜻을 모았다. 구체적인 일정은 실무회담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날씨 등을 고려할 때 10월 말에 행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내에 다시 한 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는 것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행사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생사확인, 화상상봉, 정례 만남, 고향방문단 등에 대해서도 남북은 의견을 교환했다.
박 회장은 "제반 여건이 허락되면 고향방문단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하자는데 긍정적 협의를 이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측은 우선 현재의 금강산 면회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보인다. 북측도 '앞으로 협의할 일'이라는 수준의 원론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고향방문단 등의 문제는 장기적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