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진영, 文정부 경제정책은 "착한 박근혜 정부 같다"

-소득주도・혁신성장・공정경제, 조화 어렵지만 함께 가야하는데 “따로 놀아”
-文정부 경제정책운용에 대한 평가와 조언①

22일 국회 예결위에서 갈등설을 부인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와 장하성 청와대정책실장(사진=유튜브)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 부동산시장 규제 미흡, 재벌개혁 부진 등으로 개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선 문 정부가 ‘착한 박근혜 정부 같다’며 경제정책만 두고 보면 과거와 다를 게 없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달 18일 진보・개혁 성향의 지식인 323명은 ‘문재인 정부 촛불정부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사회경제개혁의 포기를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믿고 담대한 사회 경제개혁에 나서라”고 촉구했지만 이후 정부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은산분리 규제완화에 전면적으로 나서면서 진보진영의 학자나 전문가들이 더욱 반발하고 있다.


이 선언에 참여했던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CBS와의 통화에서 “은산분리 규제는 산업자본이 은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적 규제인데 정부가 이를 되려 풀려고 하면서 신자유주의가 가장 강조하는 규제완화라는 키워드를 경제 정책의 최상위 개념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또 “정부가 재벌 개혁과 관련해 자발적인 개혁만 얘기하고 있지 제도와 정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메스를 가하지 않고 있고, 경제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긴요한 문제가 부동산시장 개혁인데 보유세 등 세제 개혁을 통한 부동산 시장 바로잡기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동부문에서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나 성과급제 도입 움직임 등으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해왔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로서 재벌이나 경제 적폐 개혁을 기치로 정권을 잡고도 경제정책운용 전반에서 재벌과 관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역시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던 정태석 전북대 교수는 지난 6일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시평’에 쓴 글에서 “지금 한국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촛불혁명과 선거를 통해 표출된 시민들의 의지와 요구가 개혁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잇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국면”이라고 규정했다.

정 교수는 “각종 개혁정책들에 대해 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지기 시작했고, 보수언론의 여론왜곡도 심각해 지고 있다”면서 “이미 기업들과 유착해 기득권 세력이 돼버린 고위 관료들이 전문성을 내세우며 암묵적으로 개혁에 저항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썼다.

또 “이런 국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 후퇴는 좀 더 심각해 보인다”며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의 방향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이를 통해 혁신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인적 혁신을 통한 전향적 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7월 18일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고 있는 진보인사들(사진=CBS TV)
앞서 지식인 323명은 선언문에서 “내각과 청와대에서 반개혁적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들을 개혁적인 인물들로 교체하여 담대한 경제개혁을 다시 추진할 것”을 촉구했고 이 선언을 주도했던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한동안 특정 인사를 거명하지 않으며 말을 아끼다 최근엔 “김동연 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경질이 필요하다(시사저널 24일 인터뷰)”고 주장하고 있다.

전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세 바퀴 경제(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고 하면서 세 개를 별도의 분야인 것처럼 하고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는 데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소득주도성장은 임금만 다루는 것처럼 그리고 혁신성장은 규제 완화만 다루는 것처럼 공정경제는 생산성 향상과 무관한 것처럼 칸막이를 쳐놓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지난달 18일 방송)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혁신성장정책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공정경제정책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각각 맡긴 결과 장 실장과 김 부총리간 이른바 ’김앤장, 장앤김’ 갈등이 나타나고 재벌개혁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결국 ‘따로 놀고 있다”는 게 진보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여기에 전문 관료들의 비협조 또는 저항이 문 정부의 올바른 경제정책운용을 물밑에서 막고 있다는 시각도 진보 전문가들은 대체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부진하다고 평가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개혁에 대해선 비개혁적인 전문 관료들의 보신주의나 복지부동 현상, 친재벌적 입장에서의 저항이 걸림돌일 수는 있으나 이런 인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는 지적들이 있다.

우선 경제정책운용을 둘러싼 정부내 갈등에 대해 부처의 속성상 최소한 5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입안, 실행해야 하는 청와대 정책실과 성과가 나는 단기 대책에 기울 수 밖에 없는 내각의 경제부처가 입장과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주로 관료나 보수적 경제학자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또 보다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세 바퀴’ 경제정책은 서로 다른 경제이론, 경제철학이 기반이어서 결과적인 정책들의 조합(policy-mix)도 모순과 갈등의 여지가 있으며 이를 잘 조율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제도경제학자인 한성안 영산대 경영학과 교수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은 포스트 케인시안(Post-Keynesian) 경제학, 혁신성장은 네오 슘페터리안(Neo-Schumpeterian)경제학, 공정경제는 제도경제학이 바탕이 돼 있는 정책들”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불평등을 줄이자는 이론인데 비해 혁신성장론은 불평등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이론으로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하며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 공정경제는 혁신성장과 부딪칠 수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따라서 서로 결이 다른 경제이론들에 기반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모순과 갈등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정책간 미세조정(fine tuning)을 해나가야 하며 실제 북유럽국가나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도 현정부내에는 경제의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이런 미세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한 교수는 평가했다.

한 교수는 “세 정책의 기반이 되는 경제 이론들은 서로 충돌도 하지만 공유되는 바도 있다”며 “노력하기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정부가 국민들에게 함께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이지만 최대한 조화시켜 나가겠다고 설득하면서 미세조정을 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론상 조화되기 어려운 정책들을 어떻게 조화시켜내느냐가 바로 “정책이고 힘이며 문화”라고 한 교수는 말했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입증해야 할 ‘실력’이라는 얘기다.

(이 기사는 “文정부의 경제정책이 ‘착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文정부 경제정책운용에 대한 평가와 조언②로 이어집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