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폭염·가뭄 견뎠더니 태풍에 우수수…제주농가 망연자실

콩, 메밀, 월동무 등 2703만㎡ 피해…비닐하우스 파손도 많아

강풍으로 하우스가 뭉게지고, 망고 나무는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사진=고상현 기자)
"마음이 착잡합니다."

제19호 태풍 '솔릭'이 제주를 휩쓸고 간 지 하루 뒤인 24일 강모(63)씨는 자신의 콩밭이 물에 잠겨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강씨는 한라산 중산간 지역인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4만5000㎡ 규모로 지난 7월 초 콩을 파종했다.

그러나 태풍이 중산간 지역에 최대순간 풍속 28.4m의 강한 바람과 함께 시간당 95㎜의 폭우를 쏟아내면서 극심한 피해로 이어졌다.

강모(63)씨가 태풍으로 물에 잠긴 자신의 콩밭을 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강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에게 "꽃이 한창 만발할 시기에 태풍으로 꽃이 떨어져 수확량이 절반가량 감소될 것 같다"며 심통해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강씨의 콩 밭을 살펴보니 밭 곳곳에 콩 꽃이 떨어져 나가거나 콩이 강풍을 못이겨 쓰러져 있는 등 폐작 분위기다.

강씨는 "농촌에 살면서 이런 피해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지만 바람만 불면 마음이 괴롭다"고 토로했다.

안모(55)씨가 태풍으로 비닐이 벗겨진 감자밭을 보수하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인근에서 6만㎡ 규모로 감자 농사를 짓는 안모(55)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씌어놓은 비닐은 곳곳에서 벗겨져 있었고, 밭 군데군데 물에 잠겨 있었다.


안씨는 "밭 곳곳 흙이 쓸려나가고, 침수되면서 감자알이 썩을 것 같다"며 "밭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는데 재파종을 할 수밖에 없어 비용 문제로 속상하다"고 말했다.

제주 서남 지역의 경우 태풍과 가장 인접하면서 시설 하우스 피해가 잇따랐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3일 기준 제주 서남쪽인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의 경우 최대순간 풍속이 초속 37.1m에 달했다. 당시 제주시는 최대순간 풍속이 초속 32m였다.

태풍으로 하우스 파이프가 뒤틀려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취재진이 24일 오후 찾아간 무릉리 한 망고 비닐하우스는 이번 태풍에 하우스 3동이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앙상하게 뒤틀린 하우스 파이프 사이로 수십 그루의 망고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거나 잎과 열매는 다 떨어져 나갔다.

인근 감귤 하우스의 경우에도 하우스 4동이 강풍에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하우스 2동의 경우 사람 손목 크기의 하우스 파이프가 이리저리 휘어지며 크게 훼손돼 있었다.

태풍으로 감귤하우스가 쓰러져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감귤 하우스 관리인인 김모(60)씨는 취재진에게 "태풍이 막 제주에 근접했을 때 이미 하우스가 쓰러졌다"며 "태풍이 오기 전부터 하우스 윗부분을 열어놓는 등 대비했지만 결과가 처참해서 굉장히 속상하다"고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는 "자연이 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하소연 할 데도 없다"며 "복구비용이 많이 나올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속상해했다.

태풍으로 양씨의 콩들이 쓰러져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현재까지 태풍 '솔릭'으로 피해를 입은 농작물 면적은 콩 2106만㎡, 메밀 280㎡, 월동무 70만㎡, 당근 55만㎡, 양배추 50만㎡ 등 모두 2703만㎡이다. 피해 신고가 계속해서 접수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한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날 오전 피해 농가를 찾아가 "행정이 피해 상황들을 확인하고 가능한 방법들을 적극 강구해 좌절한 농민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지사가 24일 오전 태풍 피해 농가를 찾아가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주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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